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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완 목사 | 기독교의 기본적 신앙의 이해 184 2021-10-17 16: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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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자 액터마이어((Joachim Jeremias) 는 율법주의자와 복음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먼저 율법주의자란 무엇인가에 관해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율법주의자란 모세의 율법에서 하나님의 뜻의 최종적인 선포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인간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서 의로은 자가 되어 구원 얻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라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인간은 능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열렬한 율법주의자들 이 었던 바리세파에 속한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려고 전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예레미아스 에 의하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며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곧 바울은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 라는 신 21의 23의 말씀이 응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사도행전 26: 11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협박하며 강제로 모독하게 하는 말을 하게하고 ...” 이 말씀과 같이 바울은 기독교 신도들에게 “예수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Anathema Jesus, ‘Jesus be cursed)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를 저주하기를 거부한 기독신도들을 사형에 처하는 일에 가표를 던졌던 것이다.(행 26:10).
그러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율법주의를 끝까지 따른 바울의 종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죄 없는 기독신도들을 핍박하며 투옥하며 사형에 가표를 던지는 악한 일이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 바울은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탄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바울의 악한 행위는 곧 액터마이어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려는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거역하는 일이 된 것이다”  그 결과로 온순하고 순결한 기독교 신도들을 박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바울이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액터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 결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선을 행하고자 했던 바울은 악을 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바울은 기독교 신도들을 핍박한 행위가 악이 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 신도들을 핍박하던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 당하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 옵소서 하고 무릎을 끓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4-60).

 

피투성이가 되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한 스데반의 말은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라고 하신 기도와 같았다. 아마도 바울은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죄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과 더 나아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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