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김세환목사 | “~껄” 2018-10-05 21:17:41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은퇴를 하자 비로소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을 날 아침, 이 사업가는 자신의 집 뒷마당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넓은 뒷마당을 바라보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엊그제까지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벌써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황금 빛으로 변해가는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나무를 왜 십년 전에 바보처럼 한 그루만 심었을까!”
당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뒷마당 곳곳에 더 많은 나무들을 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습니다. 그러나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거는 이미 우리의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좀 더 아내에게 충실할 껄, 아무리 바빴어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투자했어야 했는데, 그때 조금만 더 참을 껄, 그 때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일을 진행하지 말았더라면! 뼈저린 후회와 아쉬움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명문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있었습니다. “의사 만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반 강제적으로 의과대학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두 부부는 머지않아 의사 가운을 입은 아들이 행복해하며 두 부부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의과 공부를 힘들어 했습니다. 아들은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 때마다 이 두 부부는 아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따끔하게 나무라기도 하면서 그의 고통을 묵살해 버렸습니다.

 

학기말 고사를 매일 치르면서 연일 고군분투하던 아들이 어느 날, 피곤하고 지친 목소리로 이 부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 나 너무 힘들어요. 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부드럽게 타일렀습니다. “이제 며칠만 더 참으면 이번 학기도 끝이다. 잘 참고 이겨내라. 여태까지 잘 했잖아!” 옆에 있던 어머니도 한마디 거듭니다. “아들, 시험 잘 치르고 와. 엄마가 맛있는 것 해 줄께!”


그날 밤, 망연자실한 아들은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힘껏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불꽃을 내뿜으며 발사된 총알은 아들의 생명을 단숨에 삼켰을 뿐만 아니라, 이 두 부부의 인생에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문신을 깊이 새겨 넣었습니다. 이 가엾은 두 부부는 지난 이 십 여년동안, 해 마다 “그날”이 되면, 아들의 무덤을 찾아와 뒤늦은 후회의 굵은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들에게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아들아,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냥 집으로 오너라!” 이 분들은 지금도 주무시다가 이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신다고 합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은 죽고 나면, “껄”이라는 단어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유독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된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가슴에 깊게 패인 후회가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목회를 할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방문을 오셨습니다. 부모님께 변변히 해드린 것도 없이 항상 모자란 아들로만 살아왔습니다. 평생을 아들에게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그날은 왜 그랬는지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는다는 “마사이 신발”을 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흰 것과 검은 것 두 켤레를 동시에 사시고 싶답니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옛말처럼, 아버지가 그런 땡강 비슷한 강짜를 부리시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니, 가운데 부분이 툭 튀어나온 이 이상한 신발을 왜 두 켤레나 사려고 하세요? 넘어지면 어쩌려고, 내일 모레면 팔순이신데! 그냥 하나만 고르세요.”


위험하다는 핑계로 한 켤레만 사시도록 했지만, 사실은, 신발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운동화 한 켤레 값이 350불을 훨씬 넘었습니다. 캔자스 시골에서 갓 올라온 그 당시에는 그런 기괴한 신발을 살 형편이 못됐습니다. 쓴 입맛을 다시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습니다.


“마사이 신발? 아니, 나같이 생긴 놈들이 뭐 이렇게 비싼 걸 신어!”

 

몇 달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형편도 많이 나아져서 늘 마음 속 어딘가에 찝찝한 기억으로 남았던 그 마사이 종족의 운동화라는 것을 샀습니다. 보면 볼수록 더럽게 생겼습니다. 소포로 보내려고 준비해 두었는데, 그날 밤 한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희 아버지 골반암 말기란다”


쇠망치로 얻어 맞은 듯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다시 걷지 못하셨고, 운동화는 항상 저에게 목에 걸린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저는 항상 구두만 신습니다. 운동을 하러 갈 때도 구두를 신고 나가다가 아내에게 늘 한 소리 듣습니다.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뭔 수를 써서라도 진열대에 있던 신발들을 죄다 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뒤늦은 후회의 주인공이 되기 싫다면, 지금 당장 뒷마당으로 나가서 십년 후에 빛나게 될 황금색 단풍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년 후에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16891877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김만우목사 | 작은 일에 충성하는 순교자들 (2018-10-05 21:10:58)
다음글 : 허종욱교수 | 東에서 부는 바람 西에서 부는 바람·548 - 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③ (2018-10-05 21: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