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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와 함께 드라마를 만들다 ① 2018-07-20 11: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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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

 

 

 

드라마 PD라고 적을 두고 있는 저에게 드라마 연출의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데, 저는 드라마 연출을 하고 싶어하기에 드라마 연출 기회가 오면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얼마전 아주 흥미있는 단편소설을 저를 아끼는 선배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그 선배는 드라마를 보는 눈이 탁월하기에 그가 꼽는 것은 드라마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한 남자가 사고사를 당하는데, 염라대왕 앞으로 가서 보니, 저승사자의 실수가 드러났습니다. 결정되어 있는 명줄보다 하루 당겨서 데려온 겁니다. 그래서 하루를 다시 살려서 보내려 하였더니, 이미 시체를 화장을 한 터라 돌아갈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자, 염라대왕은 그에게 다른 삶을 하루 허락합니다.


이때 그가 원하는 하루 삶은 현금 지급기였습니다. 현금 지급기가 되어 하루를 더 살게된 그는 장례비를 치루기 위해 찾아온 부인을 만나게 되고, 못다한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는 바람에 정해진 하루에서 몇분을 초과해서 죽음의 세게로 다시 온 그는 염라대왕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때 한 스님의 진언으로 걸레로 환생한다는 환타지성 멜로입니다.  우선 재미가 있습니다. 의미도 있습니다. 적당한 감동도 있습니다.


저는 염라대왕으로 설정된 사후세계가 마음에 차지 않아 하나님을 만나는 걸로, 천국으로 온 것으로 바꿔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꼬인 것은 그때부터 였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기에 하루를 잘못 계산하여 데려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간특한 저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표현하고, 옆에 계신 예수님은 같은 빛인데,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지게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이때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높이를 낮게 하는 거지요.)


하루를 일찍 데려온 것에 대해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예수님이 말합니다.
“내가 저 녀석을 위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저놈이 참회하면 제 피값으로 하루 더 살게 해줍시다.”

패자부활절이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싶은 거지요.

 

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저승사자는 누가 하면 좋을까 하고 친구 목사님께 여쭈었더니 그는 이렇게 차가운 해석을 내려주셨습니다.
1. 성경에는 저승사자가 등장하지 않고
2. 신학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삼위일체라 높고 낮음을 말하기 어렵고…
3. 죽은 다음에 또 다른 기회는 없으며, 패자부활전 같은…
4.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 하나님의 실수로 혹은 저승사자의 실수로… 이건 반성경적이고…
5.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어떤 초차원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는 점. 그래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간다고 말한다는 점. 이 드라마에서 천국 설정이 지나치게 불교나 도교적이라는 데 근본적 문제
6. 성경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인데, 그것을 드라마로 표현하면 문자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항간에 천국지옥체험기는 기독교신앙에 백해무익한 것으로 보임.
7. 성경은 누구나 죽는다, 죽은 뒤에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 재림시 부활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이 없다, 그곳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다 등을 말하는 정도에서 그칠 뿐… 더 구체적인 묘사는 득보다 실이 많게 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 등등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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