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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까르보나라(Carbonara)와 전도부인(Bible Woman) 2019-02-08 16: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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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초기 전도부인들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전에 부목사로 함께 사역을 했던 목사님 한 분과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저는 이 목사의 추천을 받아 “까르보나라 돈까스(Carbonara Tonkatsu)”라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목사님, 요즘에는 이 돈까스가 대세입니다” 강력한 추천에 멋모르고 주문을 했지만, 도대체 “까르보나라”가 어떤 맛인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잠시 후, 돈까스를 칼로 썰어서 한 입 베어 먹었는데 맛이 아주 묘했습니다. 치즈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정작 맛은 밍밍하고 찝찔했습니다. 제 얼굴이 탐탁하지 않았는지 앞에 앉아 있던 이 목사가 한 마디 했습니다. “맛이 별로지요? 저 같이 젊은 사람들의 취향이지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입술까지 삐져 나왔던 말이 “맛이 별로인데” 였는데, 이 목사의 말을 듣자, 저절로 말이 바꿔졌습니다. “맛이 별미네! 내 취향일세” 그러자 이 목사가 저의 말에 웃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역시, 우리 목사님은 영원한 신세대. 목사님 짱!” 약간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머리를 끄덕이며 맛이 괜찮다고 연신 반복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서 울려 나왔던 소리는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는 먹지 말자”

 

“까르보나라”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석탄 장사”(숯구이) 또는 석탄 광부를 지칭하는 “까르보나리”(Carbonari)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00년 대에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꾸면서 숯구이로 위장을 하고 비밀리에 활동하던 “혁명 대원들”을 지칭했던 말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자유롭게 다니면서 위험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숯구이”보다 더 편한 직업이 없었던 것입니다. 거창하고 자극적인 단어 설명에 비해서는 “까르보나라 소스”의 맛이 너무 싱겁고 텁텁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 바로 그 사람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건강이나 성격 그리고 삶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비밀 결사 대원 정도라면 먹는 음식이 쥐나 뱀, 그리고 마늘이나 자극적인 핫 소스는 되어야 할텐데, 심심한 맛의 “까르보나라”라는 것이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미국에서 개량되어 나오는 것과는 달리, 원래의 까르보나라는 생크림이 전혀 들어있지 않고,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달걀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광부였던, 혁명가였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렇게 간단하나마 때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유와 치즈 그리고 생크림을 넣어서 만든 것이 “까르보나라 소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맛있다고 먹는데, 우유나 치즈를 못 먹는 저의 입맛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나이”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까르보나라”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상하게 “전도부인”(Bible Woman)이 생각납니다. 이 여성들은 한국의 전통 소스인 “고추장”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한국 개신교 역사 속에서 황금같이 빛나는 존재들입니다. 1885년 미연합감리교회의 첫 여성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부인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철저하게 숨겨져 있던 한국여성들에게 교육을 가르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스크랜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외적인 사역 못지 않게 그녀가 열정을 쏟았던 것은 조선 사회 속에 감춰져 있는 여성들을 하나씩 찾아내서 교육을 시키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도 단 시간 내에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크랜턴 부인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전도부인”입니다.

 

전도부인들은 보통 2~3명씩 돌아다니며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안방의 여성들에게 성경과 찬송가를 팔았습니다. 그들이 책을 판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직접 돈을 주고 책을 사지 않으면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여성들 중에는 한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도부인들은 그들에게 먼저 한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쌀 부대를 들고 다니며 쌀독에 쌀을 채워 주기도 하고, 말동무가 필요한 할머니들에게는 말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간절히 기도를 해 주기도 하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주었습니다. 일찌감치 나라의 미래는 여성들에게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갖고 젊은 여성들에게 학교에 가서 전문 교육을 받을 것을 강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 증거의 최전방에 섰던 용사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전도부인들은 한국 기독교가 남성중심으로 체계화되고, 조직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까르보나라같은 혁명가들이 조국의 통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편입되었던 것처럼, 조선의 고추장같은 전도부인들도 교회가 설립되고, 신앙생활이 활성화되면서부터 교회 안으로 스며들거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전도부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록과 기억들이 소실되어 많이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분들의 활약상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에게 감화를 받은 전도부인들의 헌신이 한국교회의 시작이었다고 말을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전국 감리교회 여선교회 모임이 있어서 참석을 했습니다. 미 전역에서 많은 여성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먼 거리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교회들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심도 깊게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뒤에서 이분들이 전도부인의 뿌리를 잇는 자랑스러운 감리교회 여성들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는 많은 여성들이 이 땅에 넘쳐 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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