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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도무지 2019-06-07 1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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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말 중에 “도무지”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 “상처가 도무지 아물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역부족이라고 생각될 때, “도무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구한 말에 황현(黃玹)이라는 사람이 쓴 책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1910년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강압에 못 이겨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국지사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도모지”(塗貌紙)라는 형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높은 가문의 자식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중요한 도덕 규범을 어기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빗었거나,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 때,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아버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식의 생명을 빼앗는 이 형벌을 행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하인들을 시켜 자식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묶어 놓고 그의 얼굴을 물에 흠뻑 젖은 “창호지”(窓戶紙)로 차곡차곡 한겹 한겹 덮어서 질식해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창호지가 한 장씩 얼굴을 덮게 되면, 숨통이 막히는 자식은 자연히 온 몸을 부르르 떨게 되고, 나중에는 눈알을 허옇게 뒤집습니다. 코피가 터지고 눈에서도 피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비로소 후회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됩니다. 그런 자식을 자녀로 둔 아버지도 그 죽어가는 자식을 보면서 함께 형벌을 받습니다. 실로 잔인한 형벌입니다. 이 “도모지” 형벌이 집단적으로 자행된 적이 있었는데,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인들”을 처형할 때입니다.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이라는 여자 선교사가 쓴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 1897)에 보면, “흥선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면서 프랑스 선교사 12명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기독교인들 6,000명을 잡아 가두게 됩니다. 그들을 돕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색출해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고문을 가했습니다. 당시 피해자가 조선 팔도에 1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원군은 마당 한 가운데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기독교인들을 묶어 놓고 이 “도모지” 형을 가했다고 합니다. 물에 젖은 창호지를 묶여 있는 사람의 얼굴에 한 장씩 붙여 가면서 선교사와 다른 잔당들이 숨어 있는 곳을 토설하도록 고문을 한 것입니다.

 

관원들이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면 질식해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선교사들의 행방과 본거지를 묻는 형리(刑吏)들의 극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눈알이 튀어나오고, 혀가 꼬이는 고통 속에서도 진술을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리 얼굴에 창호지를 올려 놓고 고통을 주어도 결코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도모지”라는 말이 적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라는 뜻으로 이 “도모지”가 사용되었습니다. “도모지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도모지”라는 말은 “도무지”라는 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끝까지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지켰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고문에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 “도무지”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기독교인들의 정신입니다. “도무지”는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지켜 낸 “순교자들의 용어”입니다. 쉽게 지쳐버리고 포기하기를 잘 하는 현대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노력해 보았지만 도무지 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해버립니다. 목숨을 잃기 전까지는 이 도무지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어제 교회 다목적실에서 상영한 “1919 유관순”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자칫하면 단순한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독립투사 유관순 열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감옥에서 그녀와 함께 고통받았던 알려지지 않은 소녀들의 이름이 자세하게 열거되었습니다. 당시 기생들과 같이 천대받던 여성들조차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신선했습니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그랬겠지만, 시대적인 상황이나 생동감 넘치는 리얼한 스펙터클은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감옥 안에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나 죄수들끼리 소소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이전의 다른 영화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가장 잘 묘사된 것 중의 하나가 독립투사들에게 일본 경찰들이 고문을 가하는 장면이었는데, 놀랍게도 “도모지” 고문이 투사들에게 행해진 것입니다. 숨이 넘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울부짖으며 끝까지 항거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거룩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대한 독립의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 분들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그 분들의 헌신 때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꿈을 품을 수 없었던 시대에 그들은 꿈을 꾼 것입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도무지”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도무지 할 수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세상에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턱없이 어렸던 것 뿐입니다. 가끔 목회 초년병의 후배들이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장연설을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자칫 나무라면 감정이 상할 것이 분명하기에 말을 돌려서 설득을 시도합니다. “아니, 큰 일을 하실 분이 이런 작은 일에 웬 엄살?” 아니면 “이 다음에 감독되실 분이 왜 그러시나?” 한껏 올려주는 말에 기분이 고무되었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의 말을 바로잡습니다. “한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똑같이 모자라고 형편없었을 저를 참아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선배 목사님들께 저절로 미안한 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 때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도무지라는 말이 입에 배어 있네요.

 

김세환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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