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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하나님 나라의 배터리(Battery) 2019-07-12 16: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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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큰 아들이 두 살 때 완구점에서 곰돌이 인형을 보고 정신을 빼앗겼던 적이 있습니다. 둥근 모자를 쓴 곰 인형이 다섯 발자국을 걸은 후에 멈춰 서서 손에 들고 있는 심벌즈를 “챙챙챙” 칩니다. 그리고 다시 또 다섯 발자국을 걷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시 심벌즈를 세번 칩니다.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인형을 보면서 뭐가 그렇게 신나고 좋은지 아이가 박수를 치면서 깔깔거리며 웃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무조건 그 인형을 사주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이의 웃음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이의 웃음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좋았습니다. 한 동안 다른 동네 아이들과 놀지도 않고 오직 곰 인형하고 만 놀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이는 이른 아침부터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곰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곰 인형의 작동 스위치를 켰는데 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내가 아들에게 “곰도 쉬어야 하는데 네가 너무 오랫동안 곰을 쉬지 못하게 해서 곰이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나이였지만, 자기가 너무 오랫동안 곰을 혹사 시켜서 죽은 줄 알고 있는 아이는 속상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지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제가 아들을 위로하며 한 마디 했습니다.

 

“대희야, 괜찮아. 곰돌이가 죽은게 아니고 힘들어서 자는거야. 저녁에 다시 일어날거야” 아무리 부드러운 말로 다독여도 아이는 좀처럼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곰 인형이 죽었다는 사실만 가슴 아파했습니다. “아빠가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네 이불 속에서 잠자게 하면 그 때 다시 깨어날 거야!” 아무리 말을 해줘도 도무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의 설득을 통해 결국 아들은 인형을 자기 포대기에 잘 싸서 양지 바른 곳에 놓아 두었습니다.

 

물론 저는 퇴근하면서 새 배터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곰 인형의 등을 열고 헌 배터리를 새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곰은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예전보다 더 힘차게 심벌즈를 두드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두 눈이 퉁퉁 부을 만큼 하루 종일 울었던 아이가 깜짝 놀라며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슬프던 얼굴이 기쁨과 감동의 표정으로 바뀌면서 함박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들은 나를 꼭 끌어안고 감사의 입맞춤을 한 후에 다시 곰을 따라다니면서 기뻐했습니다. 아들은 두 살의 나이에 곰 인형을 통해 죽음과 부활의 도(道)를 배운 것입니다. 굳이 신학적으로 따지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인생은 언제든 끝이 오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배터리를 새 것으로 갈아주시면 다시 살아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들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장례식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입니다. 옛날로 계산하면 죽음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나이인데 젊은 사람의 장례 못지않게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 때에는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즐거운 장례”라는 뜻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피 우는 자녀들을 오히려 놀리며 야단쳤습니다. “아니, 호상인데 왜 청승맞게 울고 있어?” 그리고는 상주에게 술을 먹이고, 화투판에 끌어들여서 함께 노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죽음이라면,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저의 아버지는 80세에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참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뒤늦게 미국으로 유학을 오는 덕분에 아버지의 노년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깊은 죄책감과 그리움에 사무쳐서 얼굴을 못 들고 장례예배를 드리는데, 강단에 서신 목사님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호상입니다. 우리 장로님은 이 땅에서 사실만큼 다 사시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그 목사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분을 아버지와 함께 양지 바른 곳에 함께 묻어드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알았습니다. “세상에 호상이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가셔서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슬프지 않을 수 있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 앞에서 절망하거나 매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서 우리의 소모된 배터리를 새 것으로 갈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린 아들이 믿지 못해서 계속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지금은 슬퍼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무척 놀라게 될 것입니다. 몇 달 전에 집으로 놀러 왔던 큰 아들이 화장실에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새 배터리 있나요? 면도기가 죽었네요.”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물었습니다. “배터리를 새로 끼우면 다시 살아날 것을 이제는 믿냐?” 아들이 뭔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어렸을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예쁘고 귀엽습니다. 저를 그렇게 바라보아 주셨을 아버지가 다시 그리워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배터리는 수명이 없겠지요?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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