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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도목사 | 체휼(體恤)하는 사랑 2019-08-09 08: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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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4월 14일, 미국 콜로라도의 브룸필드 메리디안 초등학교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마리 팩(Marlee Oack)은 1년 전부터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1년에 걸친 항암치료를 마친 후 마리는 학교로 돌아가기가 겁이 났습니다. 아직 머리가 자라지 않았고, 몸도 많이 약해졌습니다. 친구들이 긴 투병생활 끝에 학교로 돌아오는 자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 카메론은 “마리가 학교로 돌아올 때 어떻게 하면 창피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카메론이 생각한 방법은 ‘함께 삭발하기’였습니다. 엄마와 의논했습니다. 엄마도 동의했습니다. 다음날 두 사람은 교장 선생님께 찾아갔습니다. 교장 선생님 또한 흔쾌하게 승낙했습니다. 학교에서 캠페인을 열기로 하고 동참하는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모아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대담해져라. 용감해져라. 대머리가 되라” 학교는 슬로건을 내걸고 학교 강당에서 삭발식 행사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무려 80명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기부하겠다고 나섰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도 동참했습니다. 마리와 마리 엄마 셀리는 이 모습을 눈물을 흘리면서 지켜봤습니다. 이날 모인 머리카락과 기부금 25,000달러는 암 환자들을 위한 재단에 기부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참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언어 중에서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중 하나가 바로 ‘체휼’(體恤)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번역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그런데 체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새롭게 번역한 개정개역에서는 이 단어를 ‘동정’으로 바꿨습니다. 뜻은 통합니다만... 저는 체휼이라는 단어가 더 좋습니다. 같은 단어가 베드로전서 3:8에 한번 더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이 단어도 개정개역에서는 ‘동정’으로 바꿨습니다.
 
체휼(體恤)이라는 단어는 특별합니다. 영어로는 그냥 ‘be sympathetic’(벧전 3:8) 혹은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히 4:15)로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마음을 느끼다... 그래서 동정(同情)이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체휼’의 한자를 한번 보십시오. 잘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기가 막히게 조합했습니다. 몸을 나타내는 ‘體’에 ‘恤’을 붙였습니다. 휼은 마음 ‘心’변에 피 ‘血’을 씁니다. 그야 말로 몸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되 함께 피를 흘리듯이.... 몸에, 마음에 피를 흘리듯이 고통을 느끼며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체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와 악에 대한 연약함, 유혹과 시험에 대한 연약함, 고난과 고통의 삶에 대한 연약함, 우리의 부와 명예와 욕망과 욕구에 대한 연약함.... 주님은 마음과 몸으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품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되고, 같이 되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체휼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사랑, 본받아야 하는 사랑 또한 그렇습니다. 저는 조금 전에 예수님은 체휼하시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되고,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실천하고 채워야 할 사랑 또한 체휼하는 사랑임을 믿으십니까? 우리도 그런 사랑을 해야 참된 사랑이요, 주님을 따르는 길임을 믿으십니까? 그런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그런 능동적인 고난의 삶에 대한 선택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삶의 책을 써나가야 함을 믿으십니까? 사도들은 그들의 서신 곳곳에서 교회를 통해서 자신이 실천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체휼하는 사랑’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받은 사랑, 예수님께 배운 사랑이 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위해 머리를 함께 깎은 초등학생들은 그들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스스로를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경험이 그들의 평생을 인도하는 빛이 되고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 또한 그렇습니다. 사랑의 실패를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체휼하는 사랑을 가르치신 주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그 사랑으로 섬기고 나누며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응도 목사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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