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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과속운전, 졸음운전 2019-08-09 1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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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 형태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앞만 보면서 달리는 사람, 주위가 산만해서 도무지 운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딴전을 부리는 사람, 운전하면서 쉬지 않고 먹는 사람,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온몸으로 춤을 추면서 운전하는 사람 등등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문자를 날리면서 곡예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입술에 루주를 바르거나 화장을 하면서 운전하는 여성 운전자들도 있습니다. 넥타이를 매거나 면도를 하면서 운전하는 개념 없는 남자들도 있고, 심지어는 종이컵에 물을 담아 양치질을 하면서 운전하는 배짱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카레이서 인줄 압니다. 앞의 차들을 요리조리 제치면서 폭풍 질주를 합니다. 뒤에서 바라보기가 아슬아슬합니다. “저 사람, 저러다가 큰 일낸다”는 넋두리가 절로 나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단편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에 보면, 차분하고 냉철한 의학박사이며 법학자인 지킬박사가 사람에게는 선과 악의 이중 성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연구를 하다가 특별한 “화학약물”을 발명하게 됩니다. 그는 밤마다 이 약물을 마시고 잔인하고 비열한 “에드워드 하이드”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악을 저지르는 살인마로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충동심을 조절하지 못해 고통을 받으면서, 낮에는 존경받는 지킬 박사로 그리고 밤에는 악의 화신인 하이드로 변신해서 극과 극의 이중생활을 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운전자들 중에도 지킬박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는 온순하고 차분합니다. 매사가 여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동차의 운전석에만 앉으면 “하이드” 씨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미친듯이 차를 몹니다.

 

예전에 “카자흐스탄”으로 단기 선교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수도인 알마티에서 고려인 마을로 두 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택시 운전사가 마치 카레이서를 방불케 했습니다. 아마도 장거리 운전을 정해진 시간에 여러 번 뛰어야 했기 때문에 서두르는 듯했습니다. 아직 경제수준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도로 중앙에 노란색 경계선도 없었습니다. 마치 살기 싫은 로마의 검투사처럼 이 운전사는 도로의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오락가락하며 미친 듯이 곡예운전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총알 택시를 여러 번 타본 적이 있었지만, 이 택시는 “엑스트라 슈퍼-듀퍼(Extra Super-duper) 익스프레스 총알 택시”였습니다. 엄청난 속력 때문에 몸이 자동으로 움찔움찔 반응해서 눈도 감아지지 않았습니다. 힐끔힐끔 운전사의 얼굴을 보았는데, 영락없는 “하이드”씨였습니다. “아, 내가 오늘 여기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체념의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두 시간 후, 주님의 은혜로 무사히 차에서 내렸는데, 한 동안 다리가 떨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요금을 받는 운전사는 다시 지킬 박사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다시는 과속 차량을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차는 과속운전 차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미국에 처음 유학을 와서 쫓기는 시간에 떠밀려 약간의 속도 위반을 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카자흐스탄” 선교를 다녀 온 이후로는 절대로 과속운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아틀란타 한인교회”로 부임한 이후, 저는 과속운전보다 더 무서운 운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졸음 운전”입니다. 함께 사역하던 전도사님 중에 졸음운전의 대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운전대에 앉기만 하면, 병든 닭처럼 졸았습니다. “잠자는 하이드”씨였습니다. 문제는 교회 목회실 사역자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라, 이 전도사님이 언제나 운전을 도맡아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선임자가 운전자 바로 옆 자리에 앉는다고 해서 저는 언제나 그 전도사님 옆에 앉아 “운전”과 “수면”을 동시에 즐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그 전도사님 덕분에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진지한 기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멀리 단독목회를 떠나면서, 그 전도사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목회를 위해서 해 주실 조언이 없나요?” 몇 년 간 참았던 울부짖음을 토해냈습니다. “졸지마!!!! 시골이라 운전시간이 길텐데,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너무도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어디를 가든지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의 졸음 운전은 항상 걱정거리였습니다. 얼마 전에 “졸음운전과 과속운전, 어느 것이 더 무서운가?”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거의 대등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과속운전의 사고율이 더 높았는데, 이제는 졸음운전 사고가 더 많다고 합니다. 과속이든, 졸음이든,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과속 운전과 졸음운전이 있습니다. 욕심에 떠밀려 과속으로 달려도 안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졸면서 달려서도 안될 것입니다. 운전 중에 도로에 세워진 “제한 속력 표시판”을 보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 알맞은 속력으로 달리고 있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인생을 운전하고 계신가요?”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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