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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22 2019-08-23 09: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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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4

 

미주리 주 타협
먼로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은 국토의 영역을 확고히 하며, 아틀란틱 해안 영역까지 경계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주리 주는 1819년 2월 흑인 자유인과 노예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난 물라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미주리 주에 못 들어오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미주리 주는 또 1825년 1847년에는 흑인 및 물라토 흑인들 이민자들이 미주리 주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1820년 미주리 주의 타협논쟁은 미국이 하나의 연합체로서 존재하는 성격을 갈라놓는 불씨가 됐고, 노예제도의 확대는 1840년대와 1850년대의 정치적인 문제의 초점이 되었다. 미주리주 타협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주들과 자유를 인정하는 주들 간에 균형을 유지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새로 구입한 루이지아나 주 영역에 노예제도가 형성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주들과 반대쪽 간에 경계선이 생기면서, 경계선 이남에 위치한 주들은 노예제도 인정, 그 이북의 주들은 자유를 인정하는 주로 갈라졌다. 먼로는 1820년 선거에 쉽게 이겼고, 그의 두번째 임기 동안에도 성장과 번영은 계속 됐다. 그러나 그는 세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했다. 첫째는 유럽국가들이 아직도 미국내에 남쪽, 북쪽의 여러 영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예제도를 둘러싼 분쟁 해결, 셋째는 미국 전역을 관통하는 도로와 운하를 놓는 일이었다. 도로망이 주 경계를 좁히게 되면, 전국적으로 노예제도의 균형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은 뻔한 것이고, 나라는 큰 분할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이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먼로는 첫째, 유럽국가들의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서, 먼로 정책을 확실하게 하여 서로 타국에 내정 간섭을 않는 정책을 폈다. 둘째,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나 당시 임박한 국가의 양분을 막기 위한 차선책으로 미주리 타협안에 서명했고 셋째, 도로와 운하를 놓는 안건은 노예제도와 맞물려 반드시 남북 주들간의 갈등을 예상하면서도 승인했다. 미국을 분열하게 하는 가장 큰 노예제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불법적으로 잡아온 흑인들을  본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법을 지지했다. ‘미국 식민지 사회’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 지역에 땅, 리베리아를 사서 흑인들을 그리로 돌려보내려 했고, 먼로는 이 일을 적극 지지했다. 그래서 리베리아의 수도 이름을 몬로비아라고 불렀다. 동시에 먼로는 토착 어메리칸들의 권한을 보호하여 인디언 구역을 지정하여, 잔디가 자라고 강물이 흐르는 한 그들에게 자기 영역에 살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은 그의 임기 동안만 유효했고, 인디언들은 10년 내에 강제 이동을 당했다. 먼로는 워싱턴의 발자취를 따라서 세번째 임기를 마다하고 1825년 백악관을 떠나 뉴욕에 사는 막내딸 마리아의 집으로 가서 살았다. 아내 엘리자베스가 1830년 사망하고 나서, 먼로도 다음 해인 1831년 제퍼슨, 존 아담스 전 대통령들의 뒤를 이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73세로 생을 마쳤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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