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이응도목사 | 소통의 시작 2019-09-20 15:42:45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19세기 ‘윌리엄 홀먼 헌트’란 사람이 그린 ‘등불을 든 그리스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교회당이나 집의 벽에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드리고 있는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이 문은 안에서만 열리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문을... 우리들의 마음과 관계의 문을 두드리실 뿐입니다. 우리가 그 문을 열고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섬길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미지근하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고집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예수님,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왜 나와 소통해주지 않으십니까?”

 

혹시 이렇게 불평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사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과 정말 말이 잘 안통한다.... 나랑 참 안맞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문을 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음의 문과 귀를 닫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열기 전에는 내가 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상대방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비로소 소통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문, 삶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열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이 땅에서의 내 삶의 교통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소통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영접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면서 하늘의 넘치는 은혜로 우리를 채우시고 그 은혜가 세상에 흐르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하늘에 대해 열리고 사람에 대해 열릴 때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으로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이 아름다운 소통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문 두드리시는 예수님께 내 마음과 삶의 문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소통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응도 목사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담임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45514225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조성은사모 | 오늘 만약 (2019-09-20 15:33:15)
다음글 : 김장환 목사의 경건생활 365일 (142) (2019-09-20 15:4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