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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16 - 부산에서의 피난생활 ② 2019-08-14 14: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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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피난생활

나의 본성은 얌전한 편이지만 성격이 적극적이라 집안의 모든 일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무슨 일을 해 가정을 이끌어가야 할지 엄두도 못 내시는 것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도 못가는 나였지만 집안의 먹고사는 일을 내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하는 슬픔을 억제하고 뜨개질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집안을 돕기로 나섰다.


아버지의 형제가 7남매였는데 전부 남자고 여자는 고모 한분이었다. 고모는 뜨개질을 참 잘 하셨는데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고 옆에서 그냥 보고 배웠던 것이다. 짜다가 모르면 또 가서 물어보고 이렇게 해서 뜨개질을 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기계로 짠 편물이라고는 거의 없어서 뜨개질을 잘하면 수입이 괜찮았다. 하루는 어머니께 실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실을 사다 감아주면 집에서 뜨개질을 해서 내다 팔았다. 기억하기로는 실 한 파운드 겂이 쌀 한 말 정도 값인데 이 실 한파운드로 아기들 스웨터 세개 정도를 짤 수가 있었다. 아기 스웨터 하나의 값이 또한 쌀 한 말 정도였던 것 같았다. 그러면 이익금이 세배가 되는 셈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 하나씩 짰다. 밥 먹고 전적으로 이 일만 했다. 큰 어머니가 오셔서 보시고 “야! 미리암아, 니 이제 골병들겠데이”하시면서 그만 하라고 하셨다.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고개가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눈이 빠져 나올 것만 같았다. 오래는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나는 피난 시절에 뜨개질을 하면서 우리 가정을 도운 때도 있었다.


우리 집근처는 미군, 유엔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이들을 상대하는 상점들이 많았다. 또 유엔군들이 담배, 초콜렛, 껌, 치약, 비누 등 각가지 물건들을 내다 팔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이 물건들을 사다 부산 국제시장에 내다 팔았다. 나도 한번 해보니 뜨개질보다 훨씬 편한 장사였다. 나는 우리 집안을 돕기위해 이런 일도 해보았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책방에 가서 영어 자습서를 사다 집에서 혼자 독학을 했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버지께 물어가며 공부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계속한 것이 있었다.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못가는 대신 피아노 개인교습을 꼭 받도록 했다. 이것만은 피난 와서도 계속했다. 우리 집에서 한 15분 거리에 이화여자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분으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1년 후 미국 줄리아드로 유학을 가버렸다. 그래서 또 다른 선생님을 구해야만 했었다. 조금 멀었지만 동래 온천장에 사는 피아노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시간만 되면 동래 온천장까지 전차타고 가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하게 된 동기

그러니까 우리 형제가 육남매이다. 막내 여동생이 1947년에 태어났는데 이 여동생이 생기기 전까지는 내가 외동딸이었다. 아버지의 형제 중에도 고모가 한 분이었는데 우리도 딸이 나 혼자뿐이라 아버지가 나를 무척 귀여워해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께서 나에게 큰 오르간을 사주셨다. 소리내는 장식(stop)이 일곱개나 달려있었는데 그 크기가 작은 피아노만 했다.


나는 이 오르간을 무척 좋아해 피아노를 꼭 배우고 싶어 했다. 이때에는 피아노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물론 피아노 선생님을 구하기도 매우 힘들었다. 우리 집은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피아노 선생님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악보 보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는 찬송가를 펴놓고 왼손으로는 멜로디를 옥타브로,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짚으시면서 제법 오르간을 잘 하셨다. 그래서 오르간 시작을 어머니에게서 배운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께 학교에서 음악책을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 음악책을 펴놓고 열심히 연습을 햇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피아노 교본 책을 구입해서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찬송가도 멜로디만 하던 내가 내 마음대로 화음도 붙여가며 치기도 했다. 그리고 쉬운 찬송가는 4부로 칠 수 있게 됐다.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기 전인데도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학예회가 열렸는데, 우리 반 아이가 독창를 하고 나는 피아노 반주를 했다. 이렇게 피아노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피아노라고 쓰인 집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했다. 나는 당장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산 피난시절에도 계속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게 됐다. 

 

강미리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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