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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18 | 고등학교에 편입 2019-08-14 14: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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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편입

1953년 7월 27일에 군사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휴전이 됐다. 온 국민이 기뻐했다. 전쟁이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학교에 가지 못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우리와 같이 살고 있던 외사촌 오빠가 나를 볼때마다 저 똑똑한 아이가 학교를 못가서 어떻게 할까 늘 걱정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의논 끝에 나를 고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 편입되었는대 학년이 늦어졌어도 월반해서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들어갔으니 너무도 기뻤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굳게 결심했다. 나는 그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몽땅 다 외우기로 했다, 수학, 영어 같은 것은 자습서를 사다 보면서 공부하고 또 수학 과목dml 잘 모르는 것은 수학 잘하는 학생에게 가서 물어서 깨우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수학은 그 공식에다 대입 시키면 문제가 술술 풀리게 되니 수학도 떨어지지 않고 잘 따라갔다. 영어는 무조건 외었다. 숙제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했다. 나는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했고 한 4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했다. 이토록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고학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생에게 가정교사와 또 피아노 개인교습을 해주며 공부했다. 초량동에 부산 앞 바다가 내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이 가정이 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이 집으로 올라가서 피아노 개인교습과 공부를 가르치고 저녁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로 작은 밥상을 놓고 새벽 2시까지 앉아 공부했다.


고등학교 시절 봄소풍을 갔다. 우리 반에 고아원에서 다니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이 아파서 소풍에 결석을 하였다.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고아원에서 사는 아이니  누가 특별히 돌봐주겠나 싶어서 가엾은 생각이 들어 점심을 먹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달라고 해서 그것을 싸가지고 고아원에 병문안하러 찾아갔다.


내가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 학생은 나를 보고 참으로 반가이 맞이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도 기뻤다.
 

돼지 새끼를 키우다

나는 대학에 꼭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1년만 공부한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제 시작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는 계속해야만 된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게 됐다.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궁리 끝에 돼지새끼 한 마리를 사다 키우자고 했다. 적은 돈을 들여 크게 키울 수 있으니 괜찮은 장사다. 그래서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하시며 돼지 우리 하나를 뜰 한쪽 구석에 지어주셔서 돼지새끼 한 마리를 사다 키우게 됐다.


몇 달을 키웠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돼지를 키워서 이것을 팔아 우리 어머니에게 맡겼다. 대학에 갈 때 학비 일부분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키운 것이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사실 이것으로 학비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휴전상태이니 서울에서 내려왔던 모든 학교들이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이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했다. 또 공부도 잘했다. 그런데 유교사상에 젖어있는 어머니가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니 “얘, 미리암아, 너 그 돼지 판 돈, 네 동생한테 양보해라. 여자가 대학에 들어가서 뭘 하니?”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않고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눅 6:29-30)라는 성경말씀이 생각 났다. 이 말씀과 같이 사랑하는 동생에게 양보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대학을 포기하라고 하시니 이것이 나에게 큰 충격 이었다. 내가 그토록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애를 썼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어머니의 말씀은 나에게 큰 번민을 안겨주는 절망의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강미리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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