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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37 2019-12-06 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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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 (John Tyler) 1

 

존 타일러에게 가장 기억될 만한 사건은 단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그가 대통령이 된 경위다. 대통령으로 인정받을 만한 기회가 없이, 너무 빨리 갑작스럽게 사망한 해리슨 대통령을 대신해 부통령이었던 타일러가 대통령이 된 경위로 인해서 그는 대통령 임기 내내 거의 일을 할 수 없었다. 국회나 그가 속했던 휘그당이나 그를 전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이탈하여 유니언에 가입한 것이다. 텍사스는 노예를 인정하는 주였기 때문에 유니언에 가입하는 절차에서 두 번이나 거부되었으나 타일러와 그의 부인 줄리아 타일러의 특별한 역할로 국회의 2/3 동의로 통과를 보았다.


존 타일러는 1790년 3월 29일 버지니아 제임스 리버의 가족 농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부농에 귀족적인 배경으로, 아버지는 판사였다. 그는 윌리엄 & 메리 대학을 졸업하고 법을 공부해서 아버지 사무엘 타일러 밑에서 일했다. 존 타일러는 1809년 변호사 자격을 땄고, 같은 해에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주지사가 되어 가족이 주의 수도인 리치몬드 버지니아로 이사했다. 거기서 그는 버지니아 주 이전 주지사였고, 미국 법무장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했었던 에드먼드 제닝 랜돌프와 같은 법률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다. 랜돌프의 지원으로 타일러는 버지니아의 입법위원으로 선출됐고, 1812년 전쟁때 직접 참여는 안했으나, 버지니아 시민군에 가입했다. 1813년에 그는 부농의 딸 레티샤와 결혼하여 여덟 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그는 결혼 3년 뒤 미국하원에 당선되었으나 국회의원 생활에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1821년 자진 사퇴하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온 타일러는 다시 정치계에 뛰어들어 1825년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고, 1826년엔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상원의원으로서 그는 곧바로 당시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의 정책에 미국 연방정부 돈을 미 전역의 길과 다리들과 다른 건축을 위해서 쓰려는 예산 승인을 반대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모두 텍사스를 독립된 주 정부로 인정했으나, 멕시코는 텍사스를 멕시코 영으로 주장했다. 타일러 행정부 기간에 이 텍사스를 미국 북쪽 유니언 주들에 가입시키는 것은 노예제도에 대한 극한 대립으로 또 다시 전쟁을 치룰 위기를 감수하는 것이었다. 텍사스 아넥세이션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국무장관 다니엘 웹스터가 사임했고, 타일러는 즉시 존 칼훈을 그 자리에 임명하고, 텍사스를 미국 유니언 주로 병합하는 일을 확실하게 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회의 인심을 크게 잃어, 그가 1862년 사망했을 때, 미국역대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그 무덤에 미 합중국 깃발의 영예를 받지 못하고 연방국기(confederate flag) 아래에 묻히게 됐다. 그러나 1915년 국회는 그의 무덤에 미합중국기 아래 기념비석을 세워 수정하고 영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1842년 9월 10일 그의 아내 레티샤가 사망한 후, 타일러는 30세 연하의 줄리아 타일러와 1844년 6월 26일 결혼했다. 젊고 발랄한 줄리아는 인기 없던 타일러 행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서로 화합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서 텍사스 아넥세이션을 이끌어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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