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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5 - 남편에 관하여 2019-08-30 15: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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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관하여

 

전 목사는 만주 봉천(현재의 심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딸만 많았고 아들은 귀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는 자랄 때 아주 귀하게 자랐다. 그리고 그의 부친께서는 사업가이시며 그 당시 오토바이도 타시며 잘 사셨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아버님께서 어린 전 목사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달리다가 그만 중국 경찰의 오토바이와 충돌을 했다고 했다.

 

어린 전 목사는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배를 지치며 밀려 나갔다고 한다. 그 때 뼈는 다치지 않아서 다행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 배가 붓기 시작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복막염이 됐다고 한다.

 

당시는 페니실린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도 복막염하면 큰 병인데 페니실린도 없었던 그때에는 아주 중병이었다. 배꼽에서 고름이 나오고 중국과 한국의 유명하다는 병원은 안 찾아간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4년 동안 학교에도 못가고 병원과 집에서 치료했던 것이다. 4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그는 어린 나이이지만 이때 벌써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그는 집에 누워서 아동세계문학 전집을 읽었다고 한다.

 

이제는 병원에서는 더 손을 쓸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기로 했다. 그때 안산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윤영순 목사님(지금 기억에 성함이 확실치 않음)께서 매일 오후 3시에 교회로 나와서 같이 기도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윤 목사님과 전 목사의 어머님과 어린 전 목사 이렇게 셋이서 오후 3시만 되면 교회에 가서 같이 기도했다. 그런데 하루는 윤 목사님께서 어린 전 목사에게 “오늘은 네가 기도할래?”하고 물으셨다.

 

 어린 나이이지만 자기는 죽을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 저를 살려주시면 장차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가서 같이 기도했는데 전 목사의 가족이 상해로 이사를 가게됐다. 그런데 떠나올때 윤 목사님께서 어린 전 목사에게 헬라어 성경책을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린아이가 읽을 수 있는 성경 책을 주시지 않고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당장 읽을 수 없는 헬라어 원어 성경책을 주셨는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 당시에는 원어성경책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윤 목사님께서는 영안으로 어린 그가 병에서 낫는 것과 장차 신학공부를 할 것을 내다보신 것 같다.

 

윤 목사님께서는 전 목사 가족이 상해로 이사 간 후에도 계속 기도했을 것이다 윤 목사님께서는 소문에 의하면 해방 후 중국 사람들에게 순교 당하셨다고 한다. 전 목사는 지금도 키는 작은 편이고 언제나 인자한 웃음을 띠시던 윤영순 목사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되어 목사님을 잊을수 없다고 한다. <계속>

 


강미리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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