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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교회에 둥지를 틀다 2018-06-29 21: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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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사역지 이동을 결심하자 이사준비는 일사 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단촐한 전도사의 살림 중 가장 소중한 재산은 어린 남매에게 매일 갈아 입히는 옷을 담은 가방 두어 개와 강단에 설 때 갈아입을 와이셔츠 몇 장, 두 벌의 양복과 딸이 즐겨 가지고 놀던 인형 하나, 그리고 아내의 옷가지, 약간의 부엌 살림살이가 전부였습니다.


창녕에서 인천 부평까지의 교통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첫돌을 앞둔 아들은 엄마 품에, 막 두살이 된 딸은 걸려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딸과 사위가 고생스러워 보이지만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일을 늘 대견스럽게 여기던 장모님의 동행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몇 차례나 버스를 갈아타고 마지막으로는 경인선 전철 부평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둠이 사방을 뒤 덮은 뒤였습니다. 반가이 맞이하는 집사님들의 따뜻한 환영은 긴장과 추위로 떨던 우리 식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정집사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분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집은 부엌을 거쳐서 방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는 천장이 나즈막한 단칸 방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입주한 것과 꼭 같은 형태의 10가구가 슬페이트 지붕으로 연결되어 쭉 일열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부평에서 맞이하는 첫날의 새벽기도는 발끝에서부터 시려오는 추위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경기, 서울의 기온은 경남의 따뜻한 기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난방용 난로없이 예배를 드리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교회는 난로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방안에서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까지도 두터운 옷을 입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추위와의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목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하루 하루의 삶은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부엌 한쪽 모퉁이에 빼곡이 채운 연탄은 100장은 족히 되었습니다.


“온돌이라도 따뜻하게 연탄 불을 세게 피웁시다”


시퍼런 연탄불이 아궁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방에 들어가지만 방은 별로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영산에서처럼 새벽 4시 기도회에 나가려고 하면 첫딸은 어김없이 함께 일어나 같이 가겠다고 엄마를 꼭 잡곤했습니다. 그러나 곧 쓰러져 주저앉곤 했습니다. 눈이 내리던 새벽에 딸은 일어나다가 쓰러져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부등켜 안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교회로 달려가 기도했습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였습니다. 정집사님이 김칫국을 한 사발 가지고 왔습니다. 온 식구가 마시고 나니 정신이 든 것 같았습니다. 훗날에 안 일이지만 온돌 방 바닥뿐 아니라 시멘트 브로크로 듬성 듬성 만들어진 벽의 틈 사이로 연탄개스가 꾸준히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건축 자재를 파는 건재상에 가서 의논하였습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시멘트 원액으로 꼭꼭 메우면 괜찮을 거라고 했습니다.


무척이나 무거운 가루 시멘트를 한 포대 사왔습니다. 건자재 상이 일러 준대로 진하게 물에 이겨 온돌 방의 틈들을 찬찬히 메웠습니다. 그리고 벽은 조금 두터운 벽지를 다시 붙였습니다. 한결 머리 아픈 것도 나아지고 아이들도 아침에 쓰러지거나 주저앉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새벽기도회의 천 번째 기도는 지난 밤에도 안전하게 잠을 잘 수있게 해 주시고 아이들이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이 기도는 하루도 거를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영면하지 않고 다시 깨어 일어 날 수있다는 사실은 매일의 기적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부평은 제4공업 단지가 세워진 곳입니다. 주로 수출품들이 이곳 공장들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수출 대한의 꿈이 날마다 부풀어 가던 역동적인 도시였습니다. 이른 아침이 되면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 온 젊은 청년들이 마치 거대한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공장지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남해의 한 섬에서 올라와 몇 년째 일하여 고향의 부모님께 꼬박 꼬박 월급을 보내드렸던 효심이 지극한 한 청년이 전기 담요의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일은 우리 가족이 부평에 도착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일어난 슬픈 때였습니다.


주일마다 함께 예배드리는 청년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올라와 알뜰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아내와 의논하였습니다.
“가끔씩이라도 청년들에게 따뜻한 음식이라도 대접합시다.”

 

 

 

전병두 목사
오레곤 주
유진 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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