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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갈 길 다가도록 30 2019-10-04 09: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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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된 혜복이를 잃었다가 찾음(지난주에 이어)

이 동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미신을 섬기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을 지을 때도 청년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집을 짓지 못하게 막자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땅을 판 주인이 저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니 방해하지 말자고 해서 무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아기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말이 많을 것인가?


갓 두살 지난 혜복이는 걷기도 하지만 뛰어가다가는 잘 넘어지는 때라 너무 불안했다. 불안한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찾아 나섰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기독교 수양관 쪽을 향해 혜복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밑에 쪽으로 가면서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집 앞에는 큰 도랑이 있었는데 수양관이 있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여기서 빨래를 한다. 물은 그렇게 깊지 않았지만 그 다리는 사람들의 평균 키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도랑 밑은 전부 바위로 덮여 있었고 다리는 전쟁 때 쓰던 넓이 약 3피트 되는 구멍이 뚫어진 철판으로 되어 있었다. 애들이 여기서 떨어지면 돌에 부딪혀 죽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 아기가 바로 이 철판다리 한 가운데 서서 무엇인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부르던 이름을 딱 멈추고 뛰어가서 가만히 혜복이를 쳐들어 안고 막 울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계속 울었다. 인정 많은 혜복이는 아무 것도 모른채 그 때도 “엄마, 울지마”하고 나의 얼굴을 토닥거려주던 기억이 난다.


성경 말씀대로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지켜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렇개 헤서 혜복이도 찾았고, 나중에 인순이의 병도 치료받고 다 낫게 되었다.


남편이 미국유학을 떠난 후
 
전 목사는 1969년 8월 말에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집을 짓는 일로 빚이 있었는데 또 미국으로 떠나보내기 위해 준비하느라 여기저기 빚도 더 늘어났다. 나는 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며 김장철이 되었어도 김장도 담지 못하고 있었다.


피아노 개인교습으로 생계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장은 경치가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기독교수양관도 이 고장에 세워진 것이다. 수 없는 교인들과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수양을 한다. 또 이곳을 찾아와 설교준비를 하시는 목사님도 계셨다. 그래서 우리 집을 짓고 난 후 우리 집 근처의 밭이었던 곳에는 전부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 동네가 깨끗해지고 주택지로서는 참 살기 좋은 곳이 됐다.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전 목사가 미국에 유학을 갔어도 나는 피아노 개인교습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우리 딸들이 학교에 간 동안에는 시간을 이용해 피아노를 열심히 치곤했다. 그래서 딸들은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멀리서 엄마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면 기뻐했다고 한다.


자기앞수표를 본인에게 찾아주다

전 목사가 유학의 길을 떠난 후 혜란이가 학교에 갔다오는 길에 어떤 돈지갑이 발에 채여 집어서 집에 가지고 왔다. 열어보니 지금은 액수가 기억이 되지 않지만 수표가 들어있었는데 거액의 금액이었다.
이 수표는 자기앞수표라 현금과 같아서 누구나 찾아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커다란 열쇠가 있었고 서울시민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주소에 금방 알아보았더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 또 본적지에 편지를 보냈더니 그런 사람 잘 모른다고 한다.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친척 되는 분이 “네가 김장도 못하고 있으니 너 김장하라고 주신 것이니 걱정말고 찾아 김장해라”라고 했지만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사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고 만약 내가 본인에게 찾아주지 못하면 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했다.


벌써 3개월이 지나 추운 겨울이 됐다. 마지막으로 찾다 못찾으면 교회에 헌금하려고 했다. 하루는 신학생 한 사람에게 동사무소에 가서 분실자의 시민증을 보이고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최근에야 등록을 했다고 하며 현주소를 알아서 왔다. 당장 편지를 써서 보냈다.  <계속>

 

 


강미리암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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