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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Family suicide averted 2 2019-10-11 07: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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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did go home, once or twice a week it seemed more like I was going to a hotel. As long as my business went well, I had many friends, but one by one they left me when my business began going down. Soon I found myself in deep sin and trouble. I was ruined and lost everything. When I faced financial depression and spiritual loneliness, was not able to stand. I needed someone to lean upon, but no one could help me.

 

I tried to bolster myself with drugs with wine, but I could not afford them I had, wife and a little son, and killing ourselves togather seemed the only thing to do. My wife agreed, so we left Seoul and went to Taegu where we knew no one, to carry out our plan. We took a room in a poor, small inn.


My little son did not know what was going on, and he wanted to go back to Seoul Since I was waiting until it was dark to commit suicide, I decided to take him to a nearby children's park during the day-one more time to make him happy.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가는 가는 것이 제겐 오히려 호텔에 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는 동안 제 곁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 사업이 점점 하향선을 그리면서 친했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점점 제 곁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큰 죄 속에 홀로 남게 되었고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외로움과 재정적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제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없었습니다. 누구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지만 저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와인과 약물로 제 자신을 북돋으려 했지만 저는 더이상 그것들을 살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았고, 저는 곧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같이 죽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제 생각에 동의했고 우리는 서울을 떠나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대구로 가서 우리의 계획을 옮길 생각으로 대구의 아주 허름한 여관의 한 방을 빌렸습니다.


어두워진 밤에 자살을 할 생각이었던 우리는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던 저의 어린 아들은 무료함에 그저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고 보채고 있었습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고 싶었던 저는 근처의 놀이터로 아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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