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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의 사연 2018-07-20 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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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은 젊은이들의 도시였습니다.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이 청년들은 전국의 지방에서 부평 제4수출 공업단지의 직장을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농어촌 출신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마음들은 착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추석이 오면 부모님께 드릴 선물들을 한 아름씩 안고 고향을 찾는 일이 큰 보람이었습니다. 고된 공장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박대관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야 도착한다는 동화속의 고향같은 초도라는 섬 출신이었습니다. 공단 내의 작은 골프채 공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을 지새우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도 맡은 주일학교 교사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로 달려오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안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 숫자는 다 합쳐야 열 대여섯 명 정도되는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는 것만 해도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회당 청소, 의자 정돈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를 도맡아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청년 전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이 하나, 둘 씩 교회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를 떠나 객지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고달픈 하루 하루였지만 주일 날은 웃음 꽃을 피우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청년들은 사택의 조촐한 상차림이었지만 가끔씩 대접하는 음식상을 깨끗하게 비우곤 하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상을 차리기 위하여는 먼저 식수 확보부터 해야만 했습니다.  부엌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단칸 방 사택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열 가구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가구에는 수도가 없었고 마당 한 쪽에 지하수를 퍼 올려 사용하는 공동 펌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열 가구의 주부들이 한 줄로 서서 차례가 되면 물을 펌프로 끌어 올려 부엌으로 날랐습니다. 꽁꽁 얼어 붙은 겨울 이른 아침에 물 한통을 부엌으로 가져오면 마음이 든든하였습니다. 우물 주변에는 늘 주부들이 물을 얻기 위하여, 또는 빨래를 하기 위해 둘러 서곤 했습니다. 음식 장만을 위하여 야채라도 씻거나 설거지라도 하려고 하면 미리 충분한 물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아침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우리 마당에는 두 줄로 서서 기다리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한 줄은 지하수 물을 담기 위해 물통을 가지고 선 줄이고,  다른 한 줄은 화장실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었습니다. 삶의 지혜가 필요한 하루 하루였습니다. 놀랍게도 여러 가구가 매일같이 지하수를 퍼 올리는 데도 샘물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부평에는 공단에 근무하는 가족을 의지하고 사는 가난한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 온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늘 부족했습니다.


박대관 청년이 부평에 온지 삼년 쯤 되었을 때 그 친형 부웅군이 군에서 막 제대하고 예순을 넘긴 홀 어머니를 모시고 부평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생활력이 남다르게 강했던 부웅군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리하카를 끌고 야채를 팔기도 하고 폐계를 받아 오토바이에 싣고 주택가를 다니며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일 만은 꼭 어머니를 모시고 예배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종일 교회에서 함께 지났습니다.


적든 많든 한 주간 동안 벌이 들인 수입에서 꼬박 꼬박 십일조을 드리는 정성은 눈시울을 적시게 하곤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기도의 대장이었습니다. 눈이 와서 여간 미끄러운 날에도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남매를 어렵게 길러 낸 어머니 김안례집사님은 외유 내강한 성품이셨습니다. 비록 한글을 읽지 못했지만 꼭 예배 시간에는 가방에서 성경과 찬송가 책을 끄집어 내어 펼쳐 놓고 쳐다 보며 노래 부르곤 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항상 밝았고 가난함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느 날 저의 고향 형님이 쌀을 한 가마 보내었습니다. 몇 바가지를 자루에 담고 김안례 집사님 댁을 찾았습니다.
“집사님, 얼마 안되지만 쌀밥 따뜻하게 지어 아드님들과 함께 드셔요”.
“어메! 우리 집에 쌀이 떨어진 것을 전도사님이 우째 알고 찾아 왔디유?”. 
얼굴의 깊이 파인 주름살을 활짝 펴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은 오래 오래 마음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40년 가까이 지난 2016년에 박부웅, 박대관 형제를 방문할 수있었습니다. 박부웅 청년은 인천에서 “작은 이들”을 위한 공부 방과 도서관등을 운영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노인분들을 섬기는 훌륭한 목사님으로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박대관 청년은 예순을 넘긴 초로의 신사 장로님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로간에 떨어져 살아왔던 그 긴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반가운 해후였습니다.

 

 

유진중앙교회 전병두목사

오레곤주 유진/스프링필드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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