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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2018-07-20 1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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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교회로 부임한 첫 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고 추웠습니다. 피난민들의 임시 주택같은 곳에서 첫돌을 앞둔 아들과 두 살을 넘긴 딸과 함께 그 겨울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돌 방으로 소리없이 새어 들어오는 연탄개스와의 싸움, 열 가구가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공동 지하수를 받기 위하여 새벽의 찬 바람을 맞으며 물동이를 옆에 두고 차례를 기다리던 줄과 화장실 이용을 위해 기다리던 또 한 줄의 풍경은 서민들의 애환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매일의 일과였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며 성장해가는 어린 아기와 같은 개척교회지만 하루 하루 성장해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기뻤습니다.


그해 겨울을 넘긴 다음, 봄 학기가 다가왔습니다. 신학교 수업을 계속받기 위하여 인천 부평에서 부산까지 통학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다짐과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집을 나서는 월요일 이른 아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부평 전철역에서 탑승하여 용산역에 도착하면 부산행 완행 열차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장장 12시간 가까운 여행 끝에 부산진 역에 도착하면 어둠살이 내려 앉는 저녁이 되곤 했습니다. 긴박한 한 주간의 공부가 끝나면 금요일 야간 완행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부산진 역으로 달려갑니다.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은 어린 두 아이와 아내뿐 아니라 기다리고 있을 소박한 교회 성도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꿈에 부풀곤 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달리는 열차 여행이 집을 떠날 때와는 달리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시끌 벅적한 출발지 역을 벗어나면 기차는 곧 삼랑진 역을 지나고 동대구역, 김천에 이어 대전 역에 도착합니다. 벌써 인천의 문턱에 와 닿은 기대로 목을 길게 빼어 차창 밖을 내다 봅니다. 여전히 밖은 칠흙같은 어둠이 이불처럼 덮여 있을뿐입니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부엌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아빠!” 소리치며 내어다 보곤했습니다. 초라하기만한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단칸 방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같았습니다. 건강하게 한 주간을 버텨 준 아이들이 고마웠고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수고한 아내에게는 미안했습니다. 바로 맞은 편에는 자리를 지켜주는 교회당이 있어서 감사하였습니다. 삐걱거리는 교회당 문을 열고 발을 들여 놓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은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생각났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섬길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있다는 자체만해도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주, 한 주 장거리  통학을 하다보니 길어만 보였던 봄학기도 어느 듯 거의 마무리 되는 6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추위도 사라지고 교회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에 마음은 가볍기만 했습니다. 1978년 6월의 마지막 주일을 앞둔 금요일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나자 서둘러 부산진역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잔뜩 뒤덮여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서울, 경기 지방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야간 열차의 차창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틀려왔습니다. 곧 그치려니 하는 바램과는 달리 북쪽으로 나아 갈수록 비는 더 많이 내리고 있었고 철로 주변의 농지에는 물이 바다처럼 넘치고 있었습니다. 꾸준히 달려가는 기차가 고마웠습니다. 수원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집중 호우로 기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과 승객들은 일단 내려 기차 역에 대기하라는 방송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아빠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어린 남매가 생각났습니다. 허술하고 나즈막한 사택이 안전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초조함으로 시간을 재고 있을 때 기차가 출발하게 되니 탑승하라는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부평에 도착하였을 때는 어둠이 덮여오는 저녁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버스정류소에 내리자 낯선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물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들이 건물 벽마다 뚜렷하게 보이고 주민들은 대피하여 마치 죽은 도시같았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열 가구의 집은 거의 처마밑에까지 물이 찬 흔적이 뚜렷하였습니다. 아직도 물은 무릎까지 차 있었고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엌 문을 열자 살림들은 엎어지고 쓰러진 채 엉망으로 뒤 엉켜 있었고 방안의 서재와 책들은 흙탕 물에 흠뻑 젖은 채로 바닥에 딩굴어져 있었습니다.


교회당으로 가 보았습니다. 의자 위까지 물이 차 있었습니다. 바닥은 진흙 뻘로 덮여 있었고 벽에 걸렸던 노아 홍수의 성화 한 폭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흠뻑 젖은 차림으로 정창길 집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정 집사님 댁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전도사님, 걱정하셨지요? 사모님과 아이들은 안전하게 큰 길 맞은 편에 있는 화생당 약국 2층집으로 제가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리로 함께 가십시다.”


2층집 문을 두드리자 아들을 품에 안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내와 딸이 글썽이는 눈물을 삼키며 반겨주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기를 받아 안았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3)
 

 

전병두 목사
유진중앙교회
(오레곤 주 유진/
스프링필드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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