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프린트
제목
윤춘식 목사 | 현대인을 위한 천로역정 4 2020-04-04 10:42:25
작성인
트위터로 보내기

교회적 배경으로는 예장 진영교회에서 고신·총회장을 역임한바 있는 김희도 목사의 자애로운 신앙인격과 십자가 중심의 전통적인 교훈 아래서 잔뼈가 성장했다. 진영은 단감의 명산지이며 기차역이 있어 외지인으로 붐비는 경남 동부권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다. 당시 일반인이나 다른 종파(천주교, 포교당, 정령)에선 연극이라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할 때, 심군식은 교회 청년들을 지휘해 예수의 성극을 만들어 공연했다고 한다. 성탄 이후엔 지역에서 하나뿐인 진영극장에서도 막을 올려 재공연할 정도로 성원을 받았으니 젊은 예술가로 불렸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교회 밖의 시련기 때에도 어린 심군식이 겪은 아픔은 컸다. 진영교회가 순교자 노선인 고려파(현, 고신)에 속했다고 총회파에 속한 목회자들과 청년들이 교회당을 습격해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학생 심군식은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기도하며 금식하면서 교회를 파수했다고 전한다. 이 일로 인해 학교에서 기독모임 간부들이 그를 구타하여 갈비뼈가 부러져 고통의 시기가 짧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가정적인 환경으로는 홀어머니 유일남 집사 슬하에서 생활이 너무도 가난하여 교회당 내부의 단칸방을 허락받았다. 4년 동안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은혜체험... 새벽기도의 꿇어앉은 마루에 어머니와 심 목사(중·고교 시절)가 함께 흘렸던 눈물자국들이 닦아내어도 선명하게 남았다고 전한다(심군식 목사 60세 화갑華甲기념문집 「믿음 생활과 하늘 위로」에서 고/김희도 목사의 축사에 썼음). 
이제 고교생 심군식이 간직했던 괴로움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풀릴만한 시점에 와 있다. 괴로움의 결과로써 연속성이 없는, 그럼에도 괴로움이 불연속선의 단회성도 아닌, 자신의 심장 안으로 용해돼 버린 종말론적 묵시였는지... 명확하게 해석하기 어려운 신앙적인 삶의 실체였다. 괴로움의 정황은 아래에 또렷이 제시된다. 
 
불신자 지구 동리 자그마한 낙을
벌꿀 먹고 잊으려 낮잠 자건만 성도는 왕자 위해
고생을 하니 그 어찌 괴롭다고 말을 안 하리
거친 산모퉁이에 바위를 안고 성도는 잠시 동안 쉬고 있었지
그때 마침 앞에서 몽둥이 들고 말없이 나타나 차며 때리네
무도하고 인정 없는 그 사람 이름 듣기에도 무서운 핍박이라오
여보 여보 성도여 정신 차려요 지금은 외로워 울고 있지만
여기서 멀지 않은 저 거리에 구름을 안은 궁전 있어요
머리엔 장식된 금관을 쓰고 세마포 몸에 걸친 왕자님이
사랑스런 그 얼굴에 미소를 띠고 당신 오기 고대하고 기다립니다
                                 
- <핍박을 만남> 2, 3, 6연   
현실에서 고통 받는 성도와 선지자의 예언 사이에서 암시되는 묵시가 돋보인다. 시인은 왕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종말을 기대한다. 시 <인간 세상 더듬어>에서도 “쓰림과 고통과 아픔과 눈물, 세상의 파란곡절”로 시작해, 마지막 행에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긴 감격을 “설움 맺힌 두 눈에 눈물 흘려요”라고 끝맺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의 특징 역시 존 번연과 단테와 앙드레 지드의 작품 주제를 빼 닮았다. 심군식은 이렇게 기독교문학에 입문하였고, 그의 습작기의 주제인 괴로움의 짐을 떠맡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삶의 무거운 보따리를 묵묵히 지고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다.
2. 심군식 문학의 특징 : 내용면과 형식미    
다음으로 심군식 문학의 전 인격적인 특징을 관찰해 볼 차례가 된 것 같다. 그의 문학에 있어 통전적인 내용과 형식미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관용의 문학
그의 문학의 색깔은 관용이다. 오병세 박사는 심군식의 면모를 회상하는 지면에서 그를 가리켜 “포용성 있는 목회자”라고 밝혔으며, 신명구 목사는 “성자의 모습”에 이른다고 묘사한바 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김영도 목사가 쓴 글로써 건축자들이 현장에 쓰고 잘려나간 각목과 축구 경기장에서 황금같이 쓰이다 바람 빠진 공처럼 그의 헌신이 ‘도덕성과 봉사’였음을 추앙했다.  
   
그의 문학이 향기를 발하는 것은 수작 “나비와 운전수”에 표상된다. 버스 운전석 앞창에서 길 잃어 팔락이는 흰나비와 운전기사와의 얘기다. 그날 운전수는 나비 한 마리를 살려준 대가로 꿈속에서 그 흰나비를 만나게 되는 행복을 맛본다. 다음 날 그 나비는 몸을 차창에 부딪쳐 급정거하게 만들고 세 발 자전거를 탄 다섯 살 꼬마를 극적으로 살려낸다는 줄거리이다. 메시지는 나비를 살린 관용이 마침내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 거기엔 흰나비가 다시 버스 앞창으로 날아들어 몸을 깨뜨리고서 무언의 희생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도배방지키
 19506875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추천 소스보기 목록
이전글 : 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 | 잘못된 결정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2020-04-04 09:47:46)
다음글 : 김양재 목사 | 내가 섬기는 하나님(왕상17:1-7) (2020-04-04 11: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