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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목사 | 세상을 이끄는 여성 리더십 23 2021-01-23 06: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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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넷 맥클레인 편 |

 

“회복과 변화의 창조자”③

그런 통에 아버지는 하시는 일외에 한 두 가지 일을 더 하셔야 했고 소방서 자원봉사까지 하느라 집에 계시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엄마도 종종 일을 하신 적이 있었으며 여러곳에서 자원봉사를 하셨다. 특히 재봉질이 취미셨던 엄마는 내 옷을 모두 손수 만들어 주셨다. 나는 그 옷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엄마가 솜씨가 있는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나는 스타일에 대해 잘 모르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애기였을 때 엄마의 옷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입혀 주셨던 옷들은 어떤 옷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다행이다. 엄마는 나의 외모에 대해 너무 민감하신 나머지 내가 스무살이 되기 직전까지 내 머리 스타일과 입을 옷들을 항상 당신이 정하셨다.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도 옷 골라 입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 정해 놓고 계셨기에 끊임없이 나에게 실망했다.

 

엄마는 내가 뭔가에 탁월하고 뛰어나길 기대하셨지만 나는 도저히 엄마의 그런 높은 기대 수준을 충족시켜 드릴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엄마는 나를 통해 당신의 꿈과 야망을 이루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한살 때 ‘예쁜 아기대회’에 출전했고 네살부터 발레 및 여러 종류의 춤을 배워 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열세살 때 모델학교에 등록해 모델 수업을 받았으며 여덟살부터 열네살 때까지 걸스카웃을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의 부모님들이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와 동생을 때리며 기르셨다는 사실이다. 주로 얼굴을 때려서 여섯살 때부터 어린 나이에도 멍을 가리려고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가곤 했다. 혹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겁이 많은 아이로 사람들 앞에 보여지는게 부끄럽고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어쩔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불안해 하는걸까?” 나도 나 자신에게 늘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나에게 문제가 많은가 보다”하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도무지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다”라고 느껴졌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 그때 나는 어린이답지 못하게 심각하고 슬퍼보였다고 한다
 

엄마가 정확한 진단이나 전문적 치료를 받으신 적은 물론 없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정신 질환을 앓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아홉살 때 또 내 남동생이 여섯살 때로 기억한다. 어느날 아버지가 라스베가스 호텔 특가 쿠폰을 구해 오셔서 우리 가족은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주말을 그곳에서 보낸 후 짐을 차에 실은 뒤 호텔비를 지불하는데 그 쿠폰은 주말에 적용할 수 없는 쿠폰이어서 정상가로 숙박비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소리 소리 지르며 아버지를 윽박지른 후 호텔직원에게 달려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왔으니 그 값에 해 달라고 싸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벌써 해결했으니 이러지 말라고 또 호텔측에서 그 값에 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라며 엄마를 설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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