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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대디 그리고 마미 2020-01-18 15: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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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개척교회와 연변과기대에서 26년간 사역하고 지난 달 24일 소천한 황의만 목사를 기리는 글로 황 목사가 전도한 중국의 수양 딸 봉화씨가 보낸 글을 2회에 걸쳐 게재하기로 한다.>
 

 

◀ 봉화씨의 뉴욕 방문시

 

<지난 호에 이어>

봉사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셨죠. 한국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매주 봉사를 나갔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선교였습니다. 저는 마을 아이들과 놀아주고, 공부를 가르쳤죠. 그렇게 2년동안 차를 몇시간씩 타고 토요일, 일요일 1박 2일로 북한이 보이는 국경지역에서 선교를 하셨죠. 그곳에 갈 때는 항상 그 많은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들을 장만하고 갔었죠. 한번은 길에서 깡패 집단을 만난 적도 있었지요. 엄청 무서웠었는지...
혹시나 이상한데 빠질가봐 건강하실 때는 1년에 두 번은 한국에 오셔서 저의 신앙을 체크하시고, 잠시 지금 다니던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겼을 때에는, 예배도 드려보고 담임 목사님도 만나보시는 등 체크를 해주셨죠. 정말 안타깝게도 대학교때는 정확히 믿었지만 졸업후에 주위에 정말 많은 선후배들이 이단에 아주 깊게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분을 제가 너무 좋아했습니다. ‘너무 좋아하지 마렴.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실망하게 될 거란다. 우리는 죄인이니깐. 좋아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란다.’ 그때도 전 좀 많이 당황했었죠.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선교사님들은 모두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짓고 있는 죄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들을 볼 때 정말 천사처럼 보였죠. 그런데 전 여전히 좋아합니다.
 

데디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꼭 붙잡기 위해서 많이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성경책을 베껴 쓰신다는 말씀을 듣고 또 놀랐습니다. 가시는 날 까지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친딸처럼 보살펴 주셨죠. ‘아빠는 주례를 서지 않는단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냉장고를 스스럼없이 열고 닫는 사이가 되었고 또 어느 순간 침대에서 마미랑 같이 마른 오징어와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항상 콜레스트롤 때문에 많이 드시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우린 참 많이 먹었죠), 또 어느 순간부터 마미의 말랑말랑한 배를 만지면서 잠들기도 했었죠. 데디는 이 모든 것을 무언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매주 1박 2일의 봉사기간, 첫날 점심은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른까지 모두 금식 했죠. 저만 빼고요. 좀 많이 약했던 저를 보고 ‘봉화는 먹어야 산다’고 하시면서 항상 제가 먹을 것을 연길에서 직접 챙겨가셨죠. 그리고 금식시간인 점심에 아무도 모르게 먹게 했죠.
 

매주 깜깜한 새벽에 떠났죠. 그날 아침 식사 담당은 무조건 데디였죠. 제가 빵을 싫어 하는 것 아셔서(지금은 아주 잘 먹는데 ᅲ) 저 때문에 항상 따뜻한 밥을 손수 지어주셨죠. 그 새벽에 난 금방 지은 따뜻한 밥, 마미는 식빵, 지금 생각해면 전 참으로 귀찮은 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때문에 밥을 하셨으니깐요. 빵은 먹지 않아도 되는데 아침에 계란은 꼭 먹어야 한다고 삶은 계란을 먹게 했죠. 그때 먹기 싫었었는데 제가 고기를 엄청 좋아했었죠. 일년에 두번씩 한국 방문하셨을 때마다 항상 한우를 먹였죠. 그것도 실컷 먹게 하셨죠. 한번은 4명이서 8인분을 먹은 적 있죠. 그때 두 여자가 6인분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항상 좋은 것만 해 주셨습

니다.
 

졸업 후 오셨을 때는 제가 밥을 사 드리고 용돈을 조금 드릴 때 매우 흐뭇해 하셨죠. 아마 받아 먹을 줄만 알았던 철부지의 성장을 대견해 하셨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먼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둘째를 출산했을 때였죠. 두 분 모두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제가 좋아하는 빈대떡이랑 육개장을 엄청 많이 만드셔서 뉴욕에서 몇시간이나 직접 운전을 하고 찾아오시기도 했죠.

 

저희 결혼 때 주례를 서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죠. 솔직히 처음엔 정말 당황했었고, 아쉬워했었죠. ‘아빠는 주례를 서지 않는단다’ 그쵸. 그 어떤 아빠가 딸 결혼식에 주례를 섭니까? 그런데 제가 결혼시간을 잘못 알려드려서 미국에서 날아오셨는데 제 결혼식도 못 보셨죠. 다행히 사진은 남겼습니다.
 

저, 지금 밥 엄청 잘합니다. 설거지도 잘합니다. 그런데 제 손으로 따뜻한 밥 한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플랫폼을 만들어 주셨고, 꿈을 실어 주셨죠. 미국 유학 준비에서 한국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을 때, 데디는 총장님실에서 직접 국제전화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연세대학교에서 석박사를 풀 장학금으로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고 학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 미국의 중심지인 뉴욕을 보여주셨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더욱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워싱톤, 나이가라폭포 등 여행도 너무 좋았습니다. 뉴욕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고, 그 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좀 더 글로벌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데디 & 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번에 미국비자도 하루만에 나왔는데, 정말 갈 수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네요. 가지 못했다는 단어를 쓰지 못하겠습니다. 말을 해서 무엇 합니까? 다 핑계죠. 정말 저를 사랑하신 것만큼 제가 데디, 마미라고 생각했으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갔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난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K 경영경제연구소에서 연변과기대로 갔을 때도 잘하셨다고 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후배들을 열심히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Mom, see you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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