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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목사 이원영을 아십니까? 2020-06-06 13: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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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읍내의 치과를 갔더니 턱 부분에 이상이 있다며 경희대 치과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기를 권하셔서 주중에 다녀왔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는 동안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하게 안동 mbc 방송에서 제작한 “오래된 약속”이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반 방송임에도 제목이 ‘선비 목사 이원영’이라는 타이틀이 흥미로워 영상을 보면서 한국교회 초기 선배 신앙인들의 하나님 사랑, 겨레사랑의 구체적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후손인 진성 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유학을 배우며 자랐던 이원영 목사(1886-1958)는 퇴계의 14세 손으로 1919년 3월 17일 안동 유생들이 주축이 되었던 예안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 안동읍 장날 시위를 주도했던  이상동 장로로부터 전도를 받고 35세에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야소교회당은 도산서원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문중들의 갖은 핍박에도 신앙의 횃불로 섬촌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1930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2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던 이분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창씨개명을 거부함으로 해방을 맞기까지 네 차례나 투옥을 거듭 당하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시무하던 안기교회에서 쫓겨나고 장로교단에서 출교 처분까지 받았습니다.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조선교육령과 창씨개명까지 거부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안동 지역 장로교 1세대였던 이원영 목사님을 소개하길 “실로 값진 것을 한 몸에 지닌 자랑스럽던 한 인물의 생애(중략) 오로지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셨다.”고 고 한경직 목사님은 회고하셨습니다.
시대적 과제를 바르게 알고 자신이 감내해야 할 짐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뚜벅 뚜벅 걸어가셨던 신앙의 선배를 대하며 “목사의 시대적 책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 역사신학 임희국 교수는 이원영 목사님을 소개하며 “이 목사는 8·15광복을 맞이할 즈음, 정치가로 나설 기회를 맞이합니다.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가 경북 안동지역 위원장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 목사는 즉각 거부하며 “신사참배로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건준의 제안을 뿌리친 뒤에는 지역교회를 순회합니다. 하얀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강단에서 성경을 강해하며 무너진 교회의 신앙을 회복하자”고 말합니다.
이 목사는 54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장에 추대됐습니다. 총회장으로서 그는 38년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신사참배 결의를 강행한 교단 지도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분열된 장로교의 화합을 위해 끝까지 힘썼습니다. 목회자의 정치력은 바로 이런 분야에서 발휘돼야 합니다. 포용과 화합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국민일보 미션 톡 2019년 7월8일 기사 일부 인용)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것과 타협과 양보 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삶을 살아내었던 선각자 신앙인 이원영 목사님의 신앙과 삶은, 백척간두 같은 기로에 서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후배된 이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엄중하게 묻게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절)

 

이도형 목사<발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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