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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23) 2018-08-10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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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벨탑과 언어의 혼잡 사건 :


(2) 21세기 성도를 향한 바벨탑 사건의 교훈 (창 11:1-9)


인류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실낙원 사건’과 아담의 10대 자손인 노아의 ‘대홍수 사건’에 이어서 성서저자에 의하여 세 번째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된 ‘바벨탑 사건’이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 역사는 반복되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도 되풀이 된다는 사실이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실낙원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한 도전과 불순종으로 초래된 비극이요 하나님의 심판 사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아담의 10대 자손인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창조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이를 거역한 인간들의 범죄로 인하여 초래된 비극이요 전(全)지구적 심판사건이었음을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인간은 어리석게도 노아의 5대 자손인 벨렉(창 10:25) 당시, 곧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시날 평지에 모여“(땅에 흩어져)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도전하려고 공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의 두 번에 걸친 범죄 사건에서처럼 이번 바벨탑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동기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들이 함께 공모하여 외치는 구호, 즉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는 말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신 이름을 드러내도록 창조된 인간(사 43:21; 민 20:12; 시 19:1; 고전 10:31 등)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과 거룩하심에 도전하여 자신들의 명예와 영광을 높이려는 동기 아래서 하나님의 보좌인 하늘 끝에 닿는 바벨탑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동기에서(창 3:5) 선악과를 따먹고, 노아 당시에 하나님과 같은 권세와 능력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천사)과 결혼함으로써 거인족(네필림)을 탄생시킨 것(창 6)과 대동소이한, 일종의 창조주에 대한 집단적 도전이요 반역이었다.  이와 같은 사탄적 공모를 하나님은 간과하실 수 없으셨고, 하나의 구음(口音)과 언어로 되어있는 인간들의 집단적 구호를 더이상 입으로 외치지 못하도록 공의의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인간은 동일한 언어로 이웃에게 소통할 수 있는 자유와 행복(낙원)을 빼앗기게 되었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5000여 가지의 각기 다른 언어와 방언들로 인하여 개인과 단체와 국가들 사이에 싸우고 갈등해야 하는, 지옥과 같은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안 되는 줄 알면서” 반복적으로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게 되는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성경에 빈번하게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첫사람 아담이 물려준 ‘원죄’ 때문이라 할 수 있다(롬 5:12-19).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은, 도둑질하기 때문에 도둑놈이 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도둑놈이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조선시대의 마지막 (고종) 황제가 일본에 예속되는 조약 문서에 서명하고 항복함으로써 조선의 모든 백성이 일본 천황에게 속한 백성이 되는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에 속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으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고 뱀(죄)에게 예속되고, 이후의 모든 인간이 뱀(죄)의 지배를 받아 똑같은 범죄를 반복하게 되었다는 성경적 진리를 인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원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뒤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영으로 오시는 성령님을 구세주와 왕으로 영접함으로써 방언이 터져 언어의 소통을 이루고 그분의 통치와 인도 아래 사는 길 밖에 없다.


둘째, 모든 죄와 악의 배후에는 ‘교만’이라는 원죄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 교만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이 아닌 인간의 명예를 높이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의 본능적 교만은 결국 자신과 함께 모든 인간을 영원한 멸망과 죽음의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사탄(사 14:12-14; 겔 28:17; 딤전 3:6)에게까지 소급된다.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의역)”라는 인간들의 구호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바벨탑의 공모자들의 동기는 이미 자신의 영광과 지혜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하나님과 비기려했던 사탄(마귀 또는 루시퍼)의 동기와 같은 것이었다.  마치 어둠이 빛 앞에서 추방당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사탄적 동기가 실패로 끝나고 하늘 보좌에서 땅으로 추방당하게 되자 마귀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애인이요 친구인 첫사람 아담과 하와를 시기하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처럼 영원히 영광 가운데 생존하며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성품과 능력-으로 창조된 그 두 사람에게 선악과를 따 먹어야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로 속이게 되고, 이후의 모든 아담의 자손들은 명예에 있어서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본질적 욕심 곧 사탄적 욕심에 감염되어 모든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처럼 받들고 섬겨주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황제병과 공주병의 근원은 결국 마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고, 아울러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마치 3500년 전의 모세(민 20:12)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칭찬과 아부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길만이 인간에게 허락된 참된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피조물의 존재 목적은 창조주의 뜻과 목적에 순종함으로써 창조주의 영광을 높이는데 있으며, 이를 통하여 피조물은, 마치 기차가 선로 위를 이탈하지 않고 계속 달려갈 때 불행을 당하지 않고 목적지에 안착하여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차와 같은 인간에게 주어진 안전과 평안의 선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령충만 곧 오순절 다락방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경험했던 성령충만 외에는 없다.  자신 가운데 왕노릇하는 교만한 사탄을 몰아내고, 사랑과 겸손과 진실의 영(성령)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와 왕으로 임재하심으로 오직 주께서만 영광을 받으시도록 오늘도 성령님을 마음 깊이 모셔들이는 환영과 영접의 기도를 함께 드려보자.  <계속>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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