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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목사 | 기독교 변증학 82 2018-11-30 16: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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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증명으로서의 변증학: 하나님의 존재
3. 형이상학적 논쟁 (Metaphysical Argument) (계속)

 

우리들은 지금까지 형이상학적 논쟁에서 세가지 내용, 목적(purpose), 원인(cause), 존재(being) 가운데 “목적”(목적론적 논쟁)에 관하여 토의 하였다. 이제 두 번째 내용인 “원인”(우주론적 논쟁(The Cosmological Argument))에 관하여 토의하고자 한다.


원인: 우주론적 논쟁(The Cosmological Argument)
목적론적 논쟁은 세계안에 있는 현상의 목적 또는 설계(design)에 촛점을 두었다. 그러나 우주론적 논쟁은 모든(every) 유한한 실체가 설계된 것으로 나타나든 그렇지 않든 반드시 무한하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다고 단정한다(AGG, 109). 이같이 단정하는 이유는 유한한 실체의 유한성(finitude)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그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심에 대한 다섯 가지 증명을 하는데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우주론적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 존 프레임은 그의 책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다섯 가지 논증에서 네 번째 증명은 식별하기 어렵다고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다섯번째는 목적론적이라고 말한다(ibid., note 26).


첫번 논쟁은 “움직임(motion)”으로부터의 논쟁이다. 모든 움직임의 원인 (cause)은 현재 움직임 이전에 있었던 움직임 (a previous motion)이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곧 궁극적으로 제 일 운동자인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를 필요로 하는 과정(process)으로 움직임을 이해 한다. 모든 물체의 움직임은 다른 존재에 의해 움직이는데, 잠재력 (potentiality)안에 “부동의 동자”가 없다면 움직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때 잠재력은 잠재력을 현실(actuality)로 축소해서는 안되며, 현실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부동의 동자인 하나님은 존재한다(see http://web.csulb.edu/~cwallis/100/st2.html).


두번째 논쟁은 “원인(cause)”으로 부터의 논쟁이다. 이것은 작용인(efficient cause)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의 과정은 “제 일 원인(first cause)” 또는 “비 원인적 원인(uncaused cause)”을 요구한다(AGG, 110). 아퀴나스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관찰하는 것은 시작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모든 발생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제 일 원인으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한다고 귀결된다.


세번째 논쟁은 필연(necessity)과 우연(contingency)에 근거한다(ibid.). 아퀴나스는 세 번째에서 하나님은 필연적 존재라는 증명을 시도한다. 모든 것은 우연적인 것은 될 수 없다. 그리고 어딘가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은 반드시 있는 존재인 것이다(ibid.).


모든 존재가 다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존재가 있는 것이다. 곧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발적으로 존재한다.”  어떤 우발적인 것이 존재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의 외적 요소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우발적인 존재(contingent existence)” (우리 자신 같은 존재)는 “의존하는 존재”이다. 필연적인 존재는 독립적이거나 또는 자존자이다(see ibid., 110, note 27).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의 존재 증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근거되어 있다. 이같은 토마스적-아퀴나스적 형태는 현재(아마도 초-시간(supra-temporal))에 존재하는 실체가 필연적으로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고 현상을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의 증명을 찾고 있는 것이다(ibid.). 우리들이 존재와 사건에 있어서 원인(causes)을 믿는 것은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의 양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로 우리들에게 원인은 사건에 있어 수많은 이유(reasons)가 있다. 반대로 수많은 사건의 이유는 사건의 원인이 된다(ibid.). 그러나 엄밀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완벽하게 상호연관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행동하심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에 하나님의 행동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이 원인을 갖는 것은 아니다(ibid.). 이 점에 대하여 프레임은 이 명제에 대한 이유를 하나님께 있어서 원인(a cause)은 일반적으로 하나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ibid., note 29).
우리들이 경험하는 매일의 삶으로 향해 보도록 하자. 이들 사건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으며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같이 생각함에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상에서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본질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우주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합리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 있는 사건은 원인이 있다는 명제를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동희 목사
 뷸라하이츠 대학 교수
The Hodos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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