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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완목사 | 기독교의 기본적 신앙의 이해 75 2019-08-23 08: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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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죄와 그 결과
1. 죄란 무엇인가?
 
C. 죄의 종이 된 인간 (죄의 구속력)
발트가 말한 대로 모든 우상들의 배후에는 ‘나’라는 우상이 있으며 모든 우상은 이 ‘나’라는 으뜸가는 우상에서 비롯된 나의 욕망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우상은 돈, 물질, 향락, 지위, 권력, 명예 등에 대한 나의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이 모든 자신의 욕망을 최고 가치로 사려하며 이 같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을 선이라고 정당화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 자기중심으로 살게 된 인간은 죄에 구속되어 죄만을 행하는 인간이 되고 만다. 루터는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강력한 경향성(a strong inclination to turn toward the self)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신학자 죤슨(Robert C.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고 요구하시는데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살려는 구심력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이것이 죄이다”


칼빈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의 의지는 완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도록 자신을 고무할 수도 없고 더욱이 선을 위해 헌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


칼빈은 이처럼 인간의 완전 부패(total depravity)를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죄악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죄의 종이 되어 큰 죄를 범한 두 사람의 경우를 볼 수 있다.


왕상 21: - 16에 보면 아합 왕이 백성 중 한 사람인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였다. 왕은 나봇에게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 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줄 것이요 ... ”(2절)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봇은 “내 열조의 기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시리로다”(3절)라고 대답하였다. 아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더라면 그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자기 욕망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4절)라고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이방 녀 왕비 이세벨은 두 증인을 세워 “네가 (나봇)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라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여 나봇을 돌로 쳐 죽게 하고 그의 포도원을 왕에게 주었던 것이다. 백성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할 왕인 아합이 이러한 큰 살인죄를 범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곧 자기 욕망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죄의 종이 된 한 인간을 볼 수 있다. 


또 한 사람의 예를 들 수 있다. 곧 다윗 왕의 경우이다. 삼하 11:2에 보면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라고 하였다. 다윗은 유부녀 밧세바를 범하여 간음죄를 범하였고 이 같은 자신의 죄를 음폐하기 위해 그 녀의 남편인 충신 우리야를 죽여 살인죄까지 범하였다. 그토록 믿음이 좋았던 다윗도 그 여인을 볼 때 정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종이 되었던 것이다. 


철학자 칸트(Kant)는 인간은 도덕법을 지켜야 할 도덕적인 존재라는 점을 주창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도덕(의와 선)을 강조하는 기독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도덕법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곧 인간은 도덕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I ought’ implies ‘I can’). 이러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기독교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가 인간은 자력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율주의적 도덕관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에 파급되었던 인간의 이성(reason)의 능력을 과신하는 인본주의적인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학자 부룬너(Brunner)는 칸트의 이 같은 인본주의적인 자율주의는 ‘하나님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선, 악을 선택해서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는 페라기우스(pelagius)의 사상과 유사하다고 하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페라기우스의 이 같은 주장은 어거스틴의 강한 반대로 결국 이단으로 낙인 찌키게 되었다.  


우리 신도들은 인간이 자력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칸트나 페라기우스와 같은 사상을 경계하며 거부해야 할 것이다.
 

 


전상완 목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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