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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목사 |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렸다구요? (막 14:3) 2020-06-06 1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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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향유 부은 3번의 사건
첫 번째 (눅 7:38) - 복음 초기에 갈릴리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인인 한 여인이 와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음.
두 번째 (요 11:3) - 십자가에 달리시기 엿새 전(토요일) 베다니 마리아(막달라 마리아가 아님)가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음.
세 번째 (마 26:7; 막 14:3) -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수요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음.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 많이 실수하는 부분 중 하나는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찬송가 346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찬송은 1889년에 Edwin Pond Parker가 작시, 작곡한 곡인데 아마도 여기서 잘못된 개념을 받아들여 ‘그러려니’ 짐작하고 설교를 해 왔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고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으며(막 16:9),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물질로 섬겼다(눅 8:1-3).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담대하게 그 곁에까지 갔던 여인이며(마 27:56),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다(요 19:25). 그후 무덤까지 따라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놓임을 보았고, 끝까지 그 무덤을 지켜보았으며(마 27:61; 막 15:47), 안식 후 첫날(첫 부활주일)에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갔다(요 20:1).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음을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하였고(요 20:2-10),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며 무덤을 들여다보았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고,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고 그대로 전했다(요 20:11-18).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병을 치료받은 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맨 처음 만난 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제자’라고 말하고 싶다. 막달라 마리아가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몇 번 있었고, 향유를 부었던 여인들은 누구인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3번 나타난다. 그런데 많은 학자/주석가/설교자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아 무리하게 해석한다. 아래의 차트를 보면 이는 분명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 초기에 있었던 일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은 복음 말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두 번째 사건은 토요일에 있었고, 세 번째 사건은 주님 잡히시기 이틀 전인 수요일에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을 하나로 보게 된다면, 무리하게 여러 가지 가정을 해야 한다. 즉, 억지로 짜서 맞추어야만 하게 된다. 나사로의 아버지가 문둥이 시몬이었을 것,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이 틀렸고 발에 부었을 것 등의 많은 잘못된 가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어난 사건의 날짜를 바꾸어야 한다. 한번 잘못된 가정을 하게 되면 그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다른 잘못을 계속해야 한다.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많은 주석의 참고자료를 보면 복음서를 시간 순으로 열거한 내용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주간의 수요일에는 “기록이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은 바로 두 번째와 세 번째 향유 사건을 동일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일, 즉 유월절 이틀 전에 일어난 사건을 마태복음 26:1-16과 마가복음 14:1-11에서 기록하고 있다. 즉, 그날에 1) 유대인들의 공모가 있었고, 2) 세 번째 향유 붓는 사건이 있었고, 3)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려고 처음으로 대제사장들을 접촉해서 은 30을 약조로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번째의 사건을 예수 잡히신 그 주간의 수요일에 원래대로 넣으면 모두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마태복음 26:1-4, 마가복음 14:1-2에는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라는 말은 바로 그날 수요일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나와서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모의를 했다. 그런데 곧바로 잡아 죽이면 백성의 동요와 민란의 일어날 것이 두려워서 명절, 즉 유월절에는 하지 말자고 논의했다. 즉, 유월절을 지내고 예수를 잡아 죽이자는 결정이었다. 만약 이들의 계책대로 예수께서 유월절이 지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다면 예수는 유월절 어린 양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의 시간이 모두 빗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수요일에 3번째 향유 사건이 있는 후 가룟 유다는 그 잔치 자리를 떠나 예수를 넘져줄 것을 약조하고 은 30을 받았다. 그러기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 잡아 죽일 날짜를 앞당겨 유월절 전에 그 일을 서둘러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자기 때와 시간에 맞추어 이루셨다. 인간들이 자기들의 계책과 방법을 찾고 그에 따라 진행하려 해도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을 자기가 예언하신대로 정확히 이루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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