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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목사 | 그 정도면 천부적 재능이다! 2018-07-06 22: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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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말을 참는 것입니다.  말을 절제하는 것은 젊었을 때도 쉽지 않지만 늙어갈수록 더 더욱 어려워집니다.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많이 나빠지고, 건강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대화의 자리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참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부족해서 정리할 수 없었던 일이나 관계들이 은퇴 후에는 시간적인 여유와 깊은 통찰력을 통해 명료하게 정리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생각들이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노인들에 대한 경로사상도 강했고, 아직 소셜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사셨던 어른들의 주옥같은 경험담이나 지혜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귀찮은 잔소리로 여깁니다.  그 정도의 지식이나 정보는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과 귀로 정보를 주고 받던 “이바구 시대”는 끝이 나고, 이제는 손가락과 눈으로 대화하는 “카톡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한 밥상에 같이 앉아서도 말로 대화하기 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스마트 폰으로 문자를 날리는 시대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평생을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며 살아온 어른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재앙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언어학자는 사람이 하루에 5만마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병이 난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그 많은 말들을 들어줄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몇 마디만 해도 피곤해하고 짜증스러워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대신 돈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는데, 돈이 없으니 억울하지만 입도 함께 닫게 됩니다.  어느 자리든지 말이 많으면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인간을 “호모 로쿠엔스” (Homo Loquens)라고 부릅니다.  “말하는 인간” 또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본질적으로 말하게 되어 있는 인간이 말을 하지 못하니 점점 더 문제들이 깊어 갑니다.

 

 

많은 분들이 “이제부터는 말을 참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잊어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슴 속에 차곡 차곡 쌓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면, 봇물 터지듯이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듣는 사람들을 질리게 해 버립니다.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조금씩 말을 했으면 좋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의 세계에 들어 있는 말들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또 다른 생명체인가 봅니다.  처음에는 아련한 기체였다가, 희로애락 같은 감성들이 섞이게 되면 다시 액체로 변했다가, 쏟아내지 않고 쌓이게 되면 점점 딱딱한 고체로 굳어서 결국에는 아이를 낳는 처절한 산고처럼 오롯이 말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말이 고프다 보니,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더 사랑을 받습니다. 특히 말을 들어 줄 때도 그냥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공감하며 “느껴주는 사람”이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친구 목사 중에 어른한테 반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옆에서 이 친구가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긴장이 되다 못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미 말의 “조심 수위”를 훨씬 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인데, “어어!”, “그래 그래, 그게 좋겠네”, “뭔 소리야, 자기는 항상 그러더라”하면서,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합니다.  염려가 많이 되어서 나중에 몇 번 따끔하게 충고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자기가 정말 그러더냐?”고 오히려 반문을 합니다.  자기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답니다. 몇 번 더 강하게 지적을 하자, 처음에는 조심하는 듯하다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야! 너는 애비 에미도 몰라보는 쌍놈 같아” 한 마디 심하게 마침표를 찍어 주지만, 그래도 개 버릇 남 못 줍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 친구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제일 좋습니다. 참, 진실한 목자랍니다.  단 한번도 말 때문에 어른들에게 지적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진 기적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믿기 힘든 사실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함께 느껴주기 때문입니다.  대화법 중에 “적극적인 듣기”(active listening)라는 청취 방법이 있는데 “함께 느껴주는 것”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단계입니다.  이 친구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 항상 눈과 귀가 말하는 분의 입술과 일직선 상에 있습니다.  얼굴 표정도 말의 분위기에 따라서 함께 바뀌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굵은 닭 똥 눈물을 뚝뚝 떨굽니다. 물개처럼 박수를 치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위 아래로 눈을 부라리면서 화를 같이 내주기도 합니다.  쌍욕까지 서슴없이 하면서 함께 공감해줍니다. 이쯤 되면 반말을 하던, 무례하게 쌍말을 하던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친구를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하는 짓이 눈에 거슬려도 나중에는 “그래, 그 정도면 천부적 재능이다!”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남의 말을 느껴준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입니다.  말이 고픈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섬김입니다.

 

 

 

 

아틀란타 한인교회 김세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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