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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교수 | 맥아더 장군 동상 방화사건과 올바른 역사의식 2018-08-10 1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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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적인 사건을 일어난 사실대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역사적인 사건에 하나님의 주권이 개입되어 있다는 기독교 세계관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난 27일 새벽, 진보이념 의식에 치우친 3명의 목사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구호를 외치며 인천 맥아더장군의 동상에 불을 지른 사건은 분별할 줄 아는 일반 시민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이 이른바 신앙인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일부 이른바 영적인 지도자라는 목사들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이 잘못된 목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진보이념에 굴복시켜 일반 시민들에게 ‘우리 민족끼리’라는 미명아래 3대 세습 친북 사상을 앞장서서 ‘전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진보단체 평화협정운동본부 공동대표 이모(61·목사)씨와 이 단체 간부 안모(60·목사)씨, 임모(59)씨 등 3명이 사다리를 이용해 4m 높이의 맥아더 장군 동상에 올라 ‘점령군우상철거! 세계비핵화! 미군추방하라!’라고 적힌 대자보를 설치한 뒤 동상에 불을 지르며 “분단의 책임은 맥아더에게 있다” “맥아더 동상을 해체하라”, “평화협정 체결하고 미군은 떠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사건 이후 20여분이 지났지만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지 않았으며 유유히 서울로 자리를 옮겨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빌딩 앞에서 열린 정전협정 65주년 집회에 참석한 뒤 종로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이들의 신병을 인계받았다. 그런데 인천 경찰당국은 왜 이들을 사건 당시에 체포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런 식의 불법적인 친북활동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지만 사정당국은 그저 방관하고 있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내가 한동대에서 가르치던 2005년 어느 봄날, 인천 자유공원에 들린적이 있었다. 6.25전쟁이 난 1950년 봄,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인천 송도와 당시에는 만국공원이라고 불렀던 자유공원으로 수학여행을 간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맥아더장군 동상이 서 있지 않았다. 이 공원은 1889년 러시아 토목기사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인천 소재 외국인 거류지의 거주자들을 위한 공원으로서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설되었다.  한국 최초의 대형 공공시설로서 개설 당시부터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공원(西公園)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에는 원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불렸다.  1957년 김정렬 인천시장이 취임하면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현재 정상에는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과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맥아더 동상 인근의 광장은 인천 시가지, 인천항과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일몰 석양을 잘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 이 공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내 눈을 의심케하는 사건을 이 동상 앞에서 대하게 됐다.  30여 명의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밧줄을 동상에 얽어메고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20여 명의 해병대 군복을 입은 장병들이 젊은이들의 행동을 저지하고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통일을 방해한 미국제국주의 역적 수장 맥아더장군 동상이 조국 땅에 서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해병대 장병들의 강력한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이 동상은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한 맥아더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상륙작전에 한국 해병대가 미군과 공동으로 참여함으로서 이 동상은 해병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점령군 두목 동상을 세워놓고 꽃다발을 갖다 놓고 비는 그런 나라가 이 나라 국민이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까”라고 외치며 자리를 떴지만 이 사건 이 후 수 십차례에 걸쳐 맥아더 동상은 수모를 면치못했다.

 

과연 맥아더장군이 데모를 벌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대로 통일을 방해한 장본인인가?  만일 맥아더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이 없었으면 현재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몇몇 젊은이들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만일 맥아더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김일성장군이 이끄는 통일과업은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김일성장군은 삼국통일 이후 처음 이루어지는 통일과업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공산통일도 괜찮다는 말이냐고 묻자 조국 통일이 우선이지 거기에 왜 이념문제가 개입되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나는 여기서 한국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이번 동상방화사건에 참여했던 목사들도 20여년 전 젊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교육이 잘못된 것 이다.  방화범 목사님들이여, 평양을 비롯해서 북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김일성 부자의 동상들에 불을 지를  생각은 없으신지요?  한국의 잘못된 목회자들 때문에 너무 많은 순진한 성도들이 오도되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어떻게 하시겠습나까?’라는 한탄이 저절로 나온다.

 

 

허종욱 박사

워싱턴 버지니아대학 교수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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