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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돈목사 |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들 32 2019-11-01 08: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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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 1

 

마틴 밴 뷰런은 미국독립 선언서가 서명된 이후, 미국헌법이 비준되기 전에 태어난 첫번째 대통령이다. 깐깐했던 그는 5피트 6인치의 작은 키를 가졌고, 옆으로 퍼진 수북한 수염은 그를 특징 짓기에 충분했다. 임기중이던 1837년 그때까지 없던 최악의 경제 공황으로 그는 매우 인기없는 대통령이 되었다. 첫 임기를 마친 후, 그는 자기의 당에서 추천을 못받아 제3당의 후보로 출마했으나 10%의 표밖에 얻지 못했다.


마틴 밴 뷰런은 1782년 12월 5일 뉴욕 킨더북의 아브라함과 한나 밴 뷰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부이면서 뉴욕과 알바니 사이에 있는 술집을 운영했고, 그는 이곳에 오고 가는 정치가들의 활발한 논쟁과 대화를 늘 들으며 자랐다. 그 대화의 내용들은 후에 그의 정치적인 견해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전까지 상류층 계급에서 주로 대통령이 나왔던 전통을 벗어나, 중류사회 출신의 보통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장점으로 삼았다. 그는 기초교육을 마치고, 프란시스 실베스터라는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바닥 청소와 심부름을 해가며 법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법정에 가서 실제 변호사의 하는 일들도 보게 되었다. 그후 그는 뉴욕시로 가서 그의 법공부의 최종학년을 ‘아론 버’의 가까운 동업자였던 ‘윌리엄 밴 네스’의 사무실에서 마쳤다.


1803년 나이 21세에 그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인 킨더북에 가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거기서 그는 빠르게 알려지면서 뉴욕주 전역에 유명세를 타고 부자 고객들을 취급하게 되고, 연방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케이스를 맡으면서 민주-공화당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민주-공화당은 기존 상류층에 대항해서 노동자, 농민들을 옹호하는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었다.


밴 뷰런은 1807년 25세에, 유년시절 친구이자 먼 일가 친척이었던 ‘한나 호’와 결혼하여, 아브라함, 마틴, 존, 윈필드 스캇, 스미스 탐슨 등 5형제를 낳았다. 그는 부인이 1819년 죽고 나서, 평생 재혼하지 않고 살았다. 1812년 전쟁 때 그는 뉴욕주 국회의원이 되었고, 군대 인원 증강을 위한 의무적인 입대를 제안해 그의 의견이 전국적인 승인을 받음으로 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틴 밴 뷰런은 민주-공화당을 조직하기에 바빴고, 중요한 이슈를 두고 마음을 합할 사람들과 연합하며 강력한 정치적 그룹을 형성되게 했고, 이들의 이름을 ‘알바니 그룹’이라고 불렀다. 이 그룹은 당시에 뉴욕의 주류 세력이었던 주지사 클린턴 지지자들의 세력을 꺾고, 밴 뷰런이 1820년 연방 국회에 당선되도록 만들었다. 풍부한 지식과 달변이었던 밴 뷰런은 국회에서 법사 위원장이 되었고,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자리에 서서 도로와 건축계획 등을 위해서 연방 정부의 돈을 쓰는 것을 막았다. 대신에 밴 뷰런은 앤드류 잭슨을 적극 지원했다.

 

 


박용돈 목사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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