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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목사 |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2019-11-08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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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욜로족(YOLO)’이란 이름이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욜로족이란 말은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종말현상의 한 형태입니다. 말세의 특징은 ‘인간의 자기 사랑’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에 자신의 삶을 얹고 갑니다. 한 해 동안 온갖 고생을 하더라도 오직 한여름 휴가만은 근사한 곳에서 보내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미 생활에 돈을 몽땅 쏟아 붓고, 집을 팔아서 렌트로 바꾸면서도 그 돈으로 세계여행을 즐깁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고생하느니보다, 당장의 즐거움을 취하는 것에 삶의 우선가치를 두는 삶의 양식입니다.

 

이런 삶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를 자족하며 사는 것이 의미 있지 않는가? 자기 인생 자기가 즐기며 살겠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어느 누구를 봐라, 이민생활 죽도록 고생 고생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고생으로 병 생겨, 모은 돈 다 써 버리고 가지 않았는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이처럼 현실을 즐기며 살자는 쪽의 변증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신앙인이라면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 더 마음이 움직입니다. 욜로족과 같은 인생은 철저하게 땅에 속한 자의 타락한 삶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장래에 나타날 영광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에게 유행하는 한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교회 부흥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는데, 목사가 저런 말을 해서 되겠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일면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은 일이 뭐가 있느냐? 사람이 많다보면 별의별 생각들과 사상들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고, 각자의 사상을 가지고 떠들기 시작하면 교회는 일시에 혼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큰 집에 산다고 큰 사람이 아니듯 큰 교회 다닌다고 큰 목사나 큰 성도가 아니듯이, 작지만 강한 교회를 세우는 꿈을 가졌노라고 선포하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사상을 전파하기도 합니다. 가족같은 작은 교회를 목회하면서, 오순도순 정답게 떡을 떼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얼굴을 가지고서 여유롭게 목회생활을 즐기는가 자신을 좀 보라는 것입니다.

 

한편 부럽습니다. 일면 동의도 됩니다. 그러나 일단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볼 때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최선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 목사, 과연 너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늘 그 질문 앞에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그런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이 이렇습니다.

 

오래전 시험이 들어 곁을 떠난 성도의 질문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일주일에 설교를 몇 시간, 몇 번 하시는데 그만한 사례를 받으십니까? 저는 시간당 10불 받습니다.’ 아주 당돌한 질문이었습니다. 분명히 시험(?)을 칠 것이고, 방학을 하고, 방황을 하겠다는 선포였습니다. 질문을 받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지만, 저의 답은 아주 간결하고 나름 시원했습니다. ‘예 집사님, 저는 일주일 24시간 주당 168시간 일 합니다. 필요하시면 한밤중이던 새벽이든 말씀 들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게 전화를 주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답을 했지만 실은 마음이 그런 것이지, 삶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동시에 회개할 생각이 겹쳐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벽예배 마치고 피곤해서 아침시간에 드러누울 때도 있었고, 훤한 대낮에 사모와 같이 경치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그 말에 대해, 일말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있을 때마다, 다시 회개하고 돌이키면서 늘 그 질문 앞에 합당하도록 몸부림치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가 작지만 교회의 아름다운 부흥이었습니다.

 

교회는 부흥을 꿈꾸고, 목회자는 부흥을 선포하고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흥의 소망을 품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통해 여전히 이 시대 가운데 하실 일이 많으신 분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역전의 은혜를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맛보아 아는 것인데, 실제 신앙의 깊은 맛을 보신 분들에게는, 욜로족이 말하는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은 소수점에도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인생역전을 맛본 사람들에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생은 역전됩니다. 예수 신앙은 역동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대학 수산학과(?)를 나온 시골 어부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에게 인생의 전부를 의탁하며 좇았을 때, 변방의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 중심을 흔들고 세상을 진동케하는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둘도 없는 명문가문에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동안 살았던 세상의 것으로 가득찼던 눈의 비늘이 벗겨지면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엄청난 박해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는 변화와 열정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열정을 다해,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생을 불태웠습니다. 이방인들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오직 예수 생명 복음 증거하는 일에 인생을 드렸습니다. 소아시아 일대와 유럽의 여러 도시에까지 찾아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절반에 해당되는 열 세 권의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의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 복음을 전하러 가기를 열망하였고, 마침내 그의 생명마저도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 안에는 인생역전이 가능합니다. 자신을 계란에 비유하고, 세상은 바위라고 생각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지나친 열등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시다가, 깊이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며 깨어지기 쉬운 계란같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는 생명이 있고, 어미닭이 계란을 품어 부화시키듯이 네가 예수생명을 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저 생명 없는 바윗돌 같은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 음성을 믿음으로 받은 목사님은 이후로 그의 삶과 그의 섬기는 교회에 주신 그 은혜와 축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 사람의 지독한 예수신앙은 그 가정 가문 자녀들에게 흘러가고 마침내 가문과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두나미스의 능력이 됩니다. 가난합니까? 배우지 못했습니까? 건강이 연약합니까? 억울할 것 없고,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를 지독하게 믿으십시오. 지독하게 교회를 섬겨 보십시오. 지독하게 교회 부흥을 위해 몸부림을 쳐 보십시오. 많이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복종과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인생, 위대한 교회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욜로족 같은 교회와 성도, 목회자를 결코 찾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오실 날을 예비하는 마지막 시대 추수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Little Rock, 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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