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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목사 | 물질의 기준은 사명의 유무입니다 2019-11-29 09: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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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성도의 삶을 말할 때, 경건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요소가 무엇인가? ‘포기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성과 물질과 쾌락 사랑함’이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말세지말에 어떤 대단한 핍박보다 더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는 요소를 생각한다면, 바로 ‘물질-돈’입니다. 바울도 말세에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며 물질의 부요함을 통한 쾌락을 추구함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강권하여 말합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세상처럼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세속적인 흐름에 대해 늘 시험당하는 것 같습니다. 돈으로 권력을 사고, 돈만 있으면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얻기도 하고, 혹자는 교회를 통한 종교적인 성취의 즐거움도 돈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의 말로 치부하기에는 가시처럼 걸리는 게 많습니다. 물질이 교회에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심심찮게 교회건축을 앞두고 직분장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 직분은 신앙자체보다는, 곧 물질의 책임분담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려할 때, 물질부분이 중요한 걸림이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분명한 관점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의 실패와 성전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사건을 볼 때, 물질관과 믿음 있는 제자의 삶은 너무나 분명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은 30이라는 물질에 매여 오고가는 세대에 가장 불쌍한 자가 된 유다에 반해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은과 금이 아닌 구원자 나사렛예수 이름의 능력을 담대하게 선포하여 능력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주님의 참된 제자는 오직 예수이름 하나로, 물질로서는 접근 불가능한 믿음의 능력만을 드러내도록 요구받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되, 저들이 필요이상의 여유 돈을 둘 만큼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전대에 은이나 금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해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열두제자를 데리고 다니실 때, 그들 가운데 헌금궤를 담당하는 제자가 있었고, 물질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제자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에 매여 땅에 보화를 쌓아두는 삶을 살지 말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규모있고 계획성 있는 쓰임을 위해 물질을 구하고 사용하되, 순례하는 전도자로서 그 제자로서의 직임에 방해가 될 만큼 소유하지는 말아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명에 적합한 물질만을 소유하며 구하여 얻으나, 물질자체로 인해 사명을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주의하며 염려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제자로 살려할 때,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사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사역자도 직업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염려할 정도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전임사역자도 바울처럼 일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굶더라도 사명을 감당하거나, 아니면 부르신 자는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의 중요한 기준은 사명의 유무입니다. 사명 때문에 회계도 필요했으나, 다른 한편 사명 때문에 두벌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소유한 물질의 액수와 사업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제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의 인정과 그의 기뻐하심을 기대할 수 없는 지나친 경제활동은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전에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하셨던 유명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일년동안 늘 바쁘다 보니까, 장로님인데도 주일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면, 일년치 십일조를 재정부장을 통해서 제출한다는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다를 수 있겠지만, 저의 소견으로는 결코 지역교회를 섬길 장로님의 모습으로는 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한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택스 신고하듯이 한다면 결코 아름다운 신앙의 본은 아닐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열심히 사업을 하시는데, 그러다 보니 주일을 섬기는 것보다 사업이 늘 우선되는 분입니다. 이 분이, 늘 입에 달고 다니시는 말이 ‘돈 벌어서 크게 한번 교회를 위해 쓰겠다’는 말입니다. 참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크게 한번 하나님을 돕겠다는 그런 한탕주의 신앙보다는, 지금 당장 겸손히 하나님앞에 나아와 부복하며 예배드리기를 원하시는데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같은 능력있는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일도 못하실 분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새벽기도를 오고 싶은데, 도저히 가게 문 때문에 올 수가 없어서 괴롭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권면하고 위로하여도 여전히 사업, 사업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양심이 그렇게 괴로우시다면,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새벽기도 해 보십시오. 딱 두주만 한번 시험해 봅시다. 아니면, 좀 늦게 문을 열고 새벽에 기도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달라고 작정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쑥 답이 들어갔습니다.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결단의 부족이지, 결코 생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손에 쥘 수 있어도, 주님의 말씀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지팡이와 두벌 옷도 가지지 못하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할 만큼 간절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복되고 영광스런 길을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이 물질욕심에 의해 오염되었음을 봅니다. 사역자의 삶에도, 목회에도 많은 오염된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목회야망을 위해서 성도들을 그릇 인도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기준이 분명한 제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자의 길은 복음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두는 가장 복된 길인 줄 믿습니다. 물질 유혹을 이겨내면서, 주님앞에서 칭찬과 인정과 상급과 존귀를 부족함없이 넉넉하게 받아 누리시는 귀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Little Rock, 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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