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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 -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 (4) 2017-08-30 09: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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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다 문(Hulda gate)

 
 
예루살렘 성벽 (walls of Old Jerusalem)
 
예루살렘의 옛 성(Old City of Jerusalem)을 두른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1킬로미터에 이른다. 1517년 오토만 제국이 팔레스틴을 점령한 후 술탄 술레이만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명령하였다. 성벽 건축은 1537년에 시작하여 1541년까지 4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4018미터, 평균 높이는 12미터, 평균 두께는 2.5미터이다. 성벽에는 34개의 망대가 건축되었는데 대부분 북쪽에 있다. 성문은 모두 6개가 건축되었는데, 1887년 새 문(New Gate)이 더해졌다. 예루살렘 성벽은 1981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성벽 위를 걸으며 예루살렘 성 전체를 잘 조망할 수 있는데, 성벽 여행은 북쪽 다마스커스 성문(Damascus gate)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예루살렘 고고학 공원 (the Jerusalem Archaeological Park) 
 
예루살렘 고고학 공원(오펠 발굴 지역)은 성전 산의 남동쪽, 예루살렘 성 안에 있다. 분문(Dung gate)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은 1976년 이래 고고학자인 벤자민 마자르(Benjamin Mazar)가 발굴한 대표적인 장소이다. 이곳에서 주목할 것은 실로암 연못에서 성전 산으로 올라가는 통로이다. 남쪽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은 이중 문(double gate)과 삼중 문(triple gate)이다. 이 두 개의 문은 여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훌다 문(Hulda gate)이라 부른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때가 되면 많은 유대인들은 훌다 문을 통해 성전으로 올라갔다. 이중 문으로 향하는 계단은 잘 보존되어 있지만 삼중 문 앞의 계단은 많이 훼손되었다. 메이르 벤 도브(Meir Ben-Dov)에 따르면 “성전을 드나들 때 예수님은 이곳을 이용하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비록 성전 산 관리가 아랍에게 있어 소수만 이중 문 내부를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 헤롯 시대의 성문의 정교한 건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삼중 문은 성전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이중 문은 출구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가족의 상을 당할 때는 반대로 이용하였다.
 
예루살렘 고고학 발굴 공원은 느헤미야서에 오벨(높은 곳)로 기록되었다(느 3:26, 27, 11:21). 예루살렘의 윗 도시(acropolis)라는 뜻이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주요 통로였던 훌다 문 근처에서 10개 이상의 정결탕이 발견되었다. 이는 성전을 방문하기에 앞서 방문자들이 몸을 정결하게 했던 시설들이다.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1967년 발굴되기까지 황폐된 이 지역은 예루살렘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1970년대의 벤자민 마자르와 1994-2000년 에일랏 마자르와 로니 리흐(Ronnie Reich)의 발굴을 통해 정결탕,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안 시대의 물 저수조, 비잔틴 시대의 주택, 아랍과 십자군 시대의 건물들이 드러나며 가장 최근에 드러난 특별한 유물은 히스기야 왕의 인장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통곡의 벽 (Western Wall) 
 
통곡의 벽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남은 성전을 둘렀던 성전 서쪽 벽을 가리킨다.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매일 수 천명의 유대인들은 기도하기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수 천 년간 성전에서 기도하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이곳에서 느낀다. 서쪽 벽은 365일, 24시간 방문할 수 있다. 서쪽 벽은 네 구역으로 나뉜다. 넓은 광장, 여자 구역, 남자 구역 그리고 남자 구역에서 들어갈 수 있는 북쪽 구역이 있다. 서쪽 벽은 약 20미터 높이로 25개 층의 돌들로 쌓였다. 큰 돌들은 주로 낮은 위치에 놓였으며 바닥에 놓인 기초석들은 솔로몬 성전에서 사용된 돌일 가능성이 크다. 헤롯 성전은 주후 70년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후 로마인들은 유대인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쪽 벽이 유대인들에게 기도의 장소가 된 것은 성전 파괴 이후 3-5세기이다. 약 2천년간 유대인들은 성전 대신 서쪽 벽을 찾아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을 위해 통곡하며 기도한 것이 벽의 이름이 되었다. 팔레스틴의 점령자들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고 서쪽 벽은 다시 유대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들은 이곳을 넓은 광장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 장소로 삼았다. <계속>
 


이주섭 목사
성서지리연구원 원장
조지아크리스찬대
역사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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