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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목사 | 기독교 신앙을 방어하라 66 2018-08-10 13: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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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증명으로서의 변증학: 하나님의 존재


1. 무신론(Atheism)과 불가지론(Agnosticism) 계속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자. “너의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5:15하).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라고 하시고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라고 하신다. 이 말씀들은 우리들의 논쟁의 방향을 지시한다. 곧 논쟁에서 무신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불가지론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2. 도덕 논쟁 (The Moral Argument)


전통적 유신론적 논쟁은 때로는 인과 관계에, 때로는 목적과 의도(design)에 그리고 때로는 존재론(일반적으로 존재의 본질)에 촛점을 맞추었다.  최근의 다양한 논쟁들은 도덕 논쟁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도덕 논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덕 논쟁은 전통적인 범주와 연합되어 발전한다 (ibid., 93)
우리들에게 도덕 논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그것에 관하여 보지 않았고, 듣지 않았거나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도덕 논쟁이 존재함을 의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사건에 대한 증인의 증언은 도적 논쟁의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음은 분명한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사람이, 은행 강도가 처음에 은행에 걸어 들어와 총을 꺼내 들고 은행원에게 갔고 돈을 들고 나간 것을 목격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증인은 강도의 행동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행동인지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거기에는 악이 존재함은 말할 것이 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어느 운전자가 고속 도로에서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부수는 것을 보고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차를 부수지 못하도록 했다면 거기에는 선한 도덕이 존재함은 사실이다.


도덕 가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많은 우리들은 무엇이 선하며 무엇이 악한 지를 직접적으로 볼 수 없고 듣지 못했어도 우리들의 경험에서 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들은 선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상급을 준다. 그러나 악한 행동은 악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따라서 우리들은 결과에 근거하여 선과 악의 개념을 형성한다(ibid., 94).  그러나 이들 결과들은 각자의 기준과 범주에 대한 적용에서 그리고 그것에 따른 각자의 경험에서 항상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 도덕 가치에 대한 다양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세상에는 도덕 가치의 다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 가지만의 도덕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 가지 가치가 존재하며 어느것도 괜찮은 것인가? 


시편 저자는 자주 악한 사람이 번영하고 평안히 죽으며 오히려 선한 사람이 한 푼 없이 가난하게 죽는 것에 대하여 불평을 자신의 시에 기록한다(시편 73편).  만약 그러한 결과가 획일적이라면 그러한 획일성은 오히려 의심스러운 도덕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ibid., 94). 만약 악이 부를 가져오고 평안함이 열매로 맺을 뿐 아니라 그것이 획일적으로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 악을 행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릴 것이 아닌가?  그런경우 악함은 더 이상 악으로 생각되지 않게 된다(ibid.). 그래서 데이빗 흄 (David Hume)은 지적하기를 “무엇이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함축하지 않는다고 한다(ibid.). 존 프레임은 도덕 평가를 내림에 있어 그 평가를 내리는 전제된 원리(presupposed principles)가 없는 사실(facts)에 대한 진술은 도덕성에 관한 어떠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ibid.).  가치없는 사실은 가치를 암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다(Is)”는 “당연함(ought)”을 암시하지는 않는다(ibid.). 

 
어떤 이는 이 도덕적 가치는 개인적인 주관적 느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앞에서 생각했던 은행 강도의 행동은 “악”이거나 또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개인의 느낌에서 보면 강도 행위는 구역질나는 것이기 때문이다(ibid.).  그러나 주관적 또는 감정적인 틀에서 다른 사람들의 윤리적 기준을 서술하는 것은 타당성있는 접근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있다. 그들은 어떤 행동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우리들이 강도의 행위는 “악”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고 하자.

 

 

이동희 목사
뷸라하이츠 대학 교수
크리스찬 세계관 협회 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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