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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28) 2018-09-14 19: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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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 :


(5) ‘이신칭의’와 ‘무조건적 계약’의 수혜(受惠) (창 15:1-21)


창세기 15장에 언급된 두 가지 사건, 즉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사건과 ‘무조건적 계약(언약)’ 사건은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가장 깊은 신학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아브람 개인에게 ‘믿음의 최고봉’ 또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를 얻게 해준 사건이었다면, 후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적 뿌리라 할 수 있는 ‘계약/언약’ 사상을 제공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 특히 루터와 칼뱅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듯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이신칭의’ 사상의 기원이 창세기 15장(6절)에 제시되어 있으며, 신구약 성경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무조건적 은혜의) ’새 언약’ 의식(Ritual)이 최초로 여기에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신칭의’ 사건(창15:1-6)에서는 아브람이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적군에게서 탈취한 전리품을 몽땅 소돔 왕에게 양보한 다음 헤브론으로 돌아와 자신의 처지와 앞날을 바라보면서, 과거 10여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속자가 아직도 태어나지 않음을 염려하게 되고,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초조와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된다. 왜냐하면,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에 한 부족의 추장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야 말로 최우선적으로 시급하게 타개해야 할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전과 같이 먼저 찾아오시고, 조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영웅적이고 수준 높은 도덕적 행동을 격려해 주신 다음 그의 미래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신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이와 같은 야웨 하나님의 격려와 안전 보장에 대한 말씀 앞에서 아브람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내면적 불안을 (원망조로) 토로한다: “야웨여, (제게 상급을 주겠다 말씀하시는데)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과거 10여년 전에 땅의 티끌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나/창13:14) 나는 (아직) 아들 하나도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이 사람을 (양자로 입양하여) 나의 상속자로 삼을 생각입니다“(창15:2-3, 필자 의역).


야웨께서는 이와 같은 아브람의 생각을 거부하시고,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여 주며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고 다시 한 번 그의 영광스런 미래를 예고하신다. 이와 같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약속 앞에서 아브람은,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주신 10여 년 전의 약속을 아직도 이행하지 않으시는 분의 말씀을 나는 더 이상 믿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도전할 것 같은데, 아브람은 한 마디의 원망 불평도 없이, 마치 엄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따르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째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이와 같은 아브람의 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체다카, 창15:6) 인정하시게 된다.


히브리어 ‘체다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심오한 신학적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의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짝꿍으로 창조하셨는데, 이와 같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한 상태를 ‘체다카’(의롭다)라 부른다. 이 용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의인(체덱)이요 본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결국 과거의 모든 종교가 추구하고 가르쳐 왔던 이론, 곧 인간의 노력(공적/선행)에 의하여 또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새로운 진리, 즉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비결은 ‘이신칭의’ 밖에 없음을 아브람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람이야 말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역설했던 복음주의와 은혜주의에 대한 최초의 증인이며(롬4장), 오고오는 세대에 수많은 성도들이 아브람의 믿음을 본받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단순히 믿고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길이 아브람을 통하여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사건(창15:7-21)에서, 야웨께서 또다른 약속 곧 가나안 땅을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소유(기업)로 주시겠다 약속하실 때, 아브람은 그 약속을 이행하신다는 증거(증표)룰 요구하게 되고, 그 증표로서 소위 ‘아브라함 계약’으로 불리우는 ‘무조건적 언약/계약’이 거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중동의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조약(Treaty/Covenant) 의식에 따라, 아브람으로 하여금 각각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 그리고 추가로 두 마리의 비둘기를 준비케 하시고, 가축들은 가운데를 쪼개어 대칭으로 벌려놓게 하시고, 새 한 마리씩 양쪽에 배치케 하신 다음, 야웨께서 쪼갠 짐승 사이로 (횃불과 연기처럼) 지나가셨다. 이것은 고대 중동에서 일반적으로 거행된 계약, 즉 두 나라 군주가 쪼갠 희생 제물 사이를 나란히 통과함으로써 양쪽이 계약 조건을 불이행할 경우에 쪼개진 짐승과 같은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는 서약 의식으로서의(렘34) 쌍무적이고 조건적인 계약(조약)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즉 한쪽(하나님)만 쪼갠 사이로 통과함으로써 하나님에게만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주어지는, 무조건적이고 편무적(일방적)인 약속이요 계약이었다. 그 의식의 장면을 지켜 본 아브람에게는 아무런 조건이나 의무가 주어지지 않는, 철저히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Grace)를 누리면 되는, 수여(Grant) 계약이었던 것이다. 전자가 인간의 노력과 충성을 조건으로 체결되는 조건적 계약이라면, 후자는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무조건적 계약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아브람의 계약’은 장차 도래할 새로운 계약, 즉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어 아브람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구원을 예고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염려와 근심 걱정 가운데 애태우며 구원 받고 성공하려는 생각 가운데 하루하루 살고 있는지, 아니면 아브람처럼 오직 주님의 능력과 은혜만을 믿고 의지하여 약속된 영원한 행복과 승리를 누리려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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