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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37) 2018-11-16 19: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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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 :
(13) 모리아산 정상의 ‘야웨 이레’ 사건(a)(창 22:1-19)


이 세상에 태어난 수백억(?)의 인간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아브라함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입증해 주는 사건,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야 말로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요 ‘믿음의 챔피언’ 임을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놀라운 사건,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서 하나님의 가슴에 가장 큰 기쁨과 감동을 안겨드린(히 11:6) -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 이외에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 하나의 사건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오늘의 본문에 소개된 모리아산 정상의 ‘야웨(여호와) 이레’의 사건이었다.


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건의 전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에 태어난 이삭이 적어도 20세 이상 되었을 때 -유대교 전통(미드라쉬)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나이 137세 때, 그리고 이삭이 37세가 되었을 때- 야웨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들, 너의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할 한 산(山)에서 그(이삭)를 번제로 바치라”(King James 번역)는 명령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은 (결연한 각오로)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아내 사라와도 의논하지 않고) 두 사람의 하인들과 함께 이삭을 데리고 (브엘세바의) 집을 떠나 3일 후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모리아 땅에 도착하여 (혹시라도 두 하인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만류할지도 모르므로) 그 두 사람을 거기(산 아래)에 머물게 한 다음, 나귀의 등에 싣고 온 장작을 이삭이 짊어지게 하고 자신은 양손에 칼과 (횃)불을 들고 산 정상에 이르러, 먼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장작을 벌여놓고,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올려놓았다. 그가 칼을 (높이) 치켜들어 이삭의 목을 (단번에)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다급한 어조로) 그를 불러 제지하신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2).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전격적인 믿음과 순종을 확인하신 야웨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에 바칠 한 마리의 수양을 준비하여 보여주시는데, 이런 동기에서 아브라함은 그 장소 이름을 ‘야웨 이레’ - “야웨께서 준비/제공하시다”라는 뜻 - 라 부르게 된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려 도망가지 못하는 숫양을 발견하여 그 숫양을 잡아 (아들 대신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된다. 이 사건 직후에 야웨 하나님께서는 재차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창할 것과 아브라함의 씨(한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1:1)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구원)을 받게 될 것을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하시는 것을 본다(창 22:16-18).


이 사건의 핵심적 의미, 곧 성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케리그마)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시작된 동기와 배경을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기 위하여(창 22:1) 독생자 이삭을 바치라 명령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의 전후 문맥을 통하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명령을 받을 당시의 아브라함의 마음은 오로지 자기 이름을 계승할 하나뿐인 아들 이삭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100세 때에 기적적으로 태어난 금지옥엽 같은 독자(獨子) 이삭을 사랑하고 돌보느라 그 아들을 주신 야웨 하나님에 대하여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직전의 글에서 밝힌 것차럼) 당시 그의 정치 사회적 위상도 크게 격상된 상태에서 그 지방의 통치자인 그랄 왕과 상호 불가침 (평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자신의 기업을 물려 받을 아들 이삭의 미래 안전까지 보장받은 상태였다.


이와 같은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관심은 마치 크리스마스 때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바비 돌(Bobby Doll)에 정신이 팔려 선물을 준 아빠를 잊어버린 딸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선물을 준 아빠와 대화를 끊고 자기 독방에 틀어박혀 바비돌과 놀고있는 딸의 모습에 질투와 섭섭함을 느끼지 않은 아빠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누차 설명한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야웨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출 20:5)이심을 가리키는데, 이와같은 관점에서 아브라함도 아들 이삭에게 몰입한 나머지 그 아들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예민한 질투감정은 (간접적으로) 본문 서두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형용어-“너의 아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 (곧) 네가 (미칠 정도로) 사랑하는 이삭(Your son, your favored one, Isaac, whom you love)(The Jewish Study Bible, 2004)”- 에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테스트하시려는 선하신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이 기회에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과 믿음을 입증해 보여드릴 절호의 챤스임을 간파하였슴이 분명하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고, 특히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을 믿었기에, 다시 말하면, 백세에 태어난 이삭을 통하여 자신의 후손 뿐만 아니라 세상 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대로 비록 자신이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쳐도 그를 다시 살려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에(히 11:19), 보통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삭도 이와같은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분명히 이해하였기에 (완력에 있어서 100세가 넘는 노인보다 몇 배나 강한 20대의 청년으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을 당한채 장작더미 위에 누워 (온유한 양처럼) 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릴 수 있었다고 본다. <계속>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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