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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39) 2018-11-30 16: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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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 :
(14) 모리아산 정상의 ‘야웨 이레’ 사건 (c)(창 22:1-19)


(우리는 앞의 글에서 아브라함의 인생여정의 최고 절정이라 불리우는 모리아산 정상에서의‘야웨 이레’사건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네 가지의 핵심적 교훈들에 대하여 고찰하였는데, 거기에 다음의 세 가지를 추가해 본다.)
다섯째, 모리아산 정상에서의 ‘야웨 이레’ 사건을 통하여 입증된 아브라함의 신앙적 승리는 온유한 성품의 대표적 모델로 불리우는 그의 아들 이삭의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브라함은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하여 그의 아들 이삭의 믿음을 자신의 믿음 수준까지 업그레이드 시켜 놓은 결과로, 부전자전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아버지의 신앙적 결단에 협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산 정상에 올라갈 당시 이삭의 나이는 적어도 20세 이상으로서, 번제단에 사용될 장작을 등에 짊어지고 해발 800m의 모리아산 정상까지 올라갈 여력이 있는 청년 때였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결박하여 제단의 장작 더미 위에 눞히려는 아버지에게 얼마든지 항의하고 반항(저지)할 수 있는 나이였음이 분명한데, 그와 같은 아버지의 행동에 한 마디의 원망이나 불평 없이 - 아마도 그가 요즘의 젊은이였다면 “왜 이러세요, 아빠, 미쳤어요?”라고 아버지에게 저항했을텐데 - 이삭은 순순히 결박당한 채로 자신의 목슴을 아버지의 처분에 맡기는,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처럼(사53:7),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리아산 정상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 나눈 극적인 대화와 관련하여 유대교 전승 가운데 전해 내려오는 내용을 어느 목사님의 예화를 약간 부연하여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메고 온 장작들을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있는 아들 이삭에게 아브라함이 먼저 말문을 연다: “내 아들 이삭아, 이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도 알고 있지?” “예, 아빠, 세상에 아빠보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아들에게 다시 묻는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아,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야웨 하나님은 진실하시며, 너를 통하여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백성이 태어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예, 아빠, 하나님의 그 약속을 저도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이삭에게 아브라함은 재차 묻는다: “내 사랑하는 아들 이삭아, 너를 통하여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야웨 하나님께서 며칠 전에 너를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 명령하셨는데, 내가 여기에서 너를 제물로 바쳐도 하나님께서 너를 다시 살려 주실 것도 믿겠지?” “예, 아빠, 저도 아빠처럼 그분을 믿고 사랑해요. 그러니 주저하지 마시고 저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세요”라고 대답하는 이삭에게 주는 아브라함의 눈물 섞인 마지막 말: “됐다. 그러면 내 아들아, 이제 여기 장작더미 위에 눕고 눈을 감아라!”


여섯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처럼 때때로 우리는 타인의 인권(人權)보다 자신의 신앙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명(인권)의 소중함 못지 않게 타인(자기 아들)의 생명(인권=생존권) 또한 소중함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을테고(창9:5,6; 마16:26), 특히 태고시절 동생(아벨)의 생명을 빼앗은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내린 심판과 형벌이 얼마나 준엄했던가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아들의 생명(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보다는 아들의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마음(심장/신6:5)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신앙적 모험을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주석가들의 주장, 즉 본문이 제시하는바 모리아산 정상에서의 ‘야웨 이레’ 사건은, 고대 중동에서 성행했던 인신제사(人身祭祀)의 풍습(왕하 3:27 참조)이 잘못되었음을 경고하고 이 극악한 (반인권적) 풍습을 중단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일종의 변증론(Apologetics)이라는 주장은 본문의 핵심적 교훈에서 빗나간 주관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약자와 가난한 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우상화하여, 마치 교회의 존재 목적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있는 것처럼 오해하면서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경건활동을 비판하는 (인권운동가적) 시각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리는 어느 여인을 보고 그 행동을 책망하면서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가룟 유다의 잘못을 예수께서도 지적하시지 않으셨던가(막14:3-11)?


일곱째, 요즘 대부분의 교회 강단에서 자주 선포되는 설교의 주제, 곧 오늘의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경건(敬虔/Piety)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은 정확한 답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본문 가운데 하나님께서도 감탄할 정도로 강조되는바 아브라함의 경건, 즉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동의 핵심에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야웨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자리잡고 있고, 이와 같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하나님의 말씀(명령과 약속)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하나님의 벗으로 선택해 주시고 온갖 역경가운데서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두려우리만큼 놀랍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경험과 감격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그 어떤 신 보다도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신실하심을 경험하였기에 그분의 말씀에 따라 과거(본토, 친척, 아비 집/창12:1)도 버릴 수 있었고, 미래의 희망 곧 아들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 그 아이에게 ...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계속>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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