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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교수 | 클라스 스킬더와 공공신학 (8) 2019-01-11 2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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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정립개념에 너무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개혁신앙적 문화관에 얼마간 위험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Bratt에 동의합니다. 나는 또한 후기의 카이퍼의 강조들에 의해서 야기된 위험들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주의적 정신과 비크리스챤들의 사고와 행동패턴들에 너무 쉽게 동화되는 위험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스킬더는 이런 위험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의 대안적 관점을 강조하면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내가 현재의 북미의 맥락 가운데서 그의 저작들을 읽어가면서 발견한 것은 Stanley Hauerwas와 다른 이들의 재세례파적인 유형에 상당히 중요한 일치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적 신학논쟁을 진지하게 취하고 있는 미국 내의 개혁신학적 크리스챤들에게 스킬더가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숙고해 보는 것을 흥미롭게 해 줍니다.
 
스킬더의 그리스도와 문화는 길이에 있어서 약 100 페이지 정도 분량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스킬더가 취급하고 있는 주제들의 모든 것을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킬더의 어조는 거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면서 그의 마음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논쟁점들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가 실제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활동을 논의하게 되기 전에 많은 신학적 논쟁점들을 다루는데, 특별히 기독론에 대해서 많이 다루게 됩니다. 이것은 미국의 독자들, 특별히 스킬더의 신학적 맥락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고안되어진 종류의 책은 아닙니다. 스킬더는 그의 생각들을 새로운 환경 속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주는 어려운 과제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미국인 “번역-해석자”(translator-interpreter)가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 나의 목적은 그 목적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기로는, 내가 최소한 어떻게 더 광범위한 그 과제가 성취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몇 가지 힌트들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여기서의 미천한 노력은 그의 논의 가운데서 단지 두 가지 주제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나는 그의 관점들이 Hauerwas와 다른 이들에 의해서 제기된 재세례파 유형의 문화적 전략에 얼마간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방식들에 주목하겠습니다. 그것은 개혁신학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카이퍼주의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국의 사상가들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 그리고서 나는 스킬더에게 있어서의 이러한 강조가 어떻게 더 넓은 전망 속에서 적절할런 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 전망 속에서 더 넓은 문화적 과제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얻고자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 몇 가지 힌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재세례파적” 교정
 나는 스킬더가 자신의 책의 마지막 세 문장에서 표현하고 있는 도발적인 관찰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옳은 방식으로 교인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우리의 지혜로운 장로야말로 복된 자이다. 자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참으로 하나의 문화세력이다. 사람들이 그를 욕한다 하더라도 내버려 두라. 그런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문화적 게으름뱅이들일 뿐이다!”

<계속>

 


발췌: 최덕성 교수(브니엘 신학교)의 리포르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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