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신앙 이야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은 어머님의 기도와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194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서, 8살 때부터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 형편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 때 저희 가족이 거주하던 판자집 이웃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제 어머니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용근이 엄마! 예배당에 한번 나가봐!” 그 이후부터 어머님은 제 손을 잡고 대구시 비산동에 위치한 '대구달서교회'에 출석하게 되셨고, 저는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교육을 받지 못한 무학이셨지만, 자식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에 참석하셨습니다. 어머님의 기도하는 생활, 부지런한 신앙생활을 보고 자란 저는 자연스럽게'대구달서교회' 중. 고등부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기도가 결실을 맺어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척도는 본인의 행동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본이 되는 행동이 신앙과 복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급 세무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셔서 대전국세청장까지 역임하시고, '나는 평생 세금쟁이' 라는 책을 쓰셨는데 책 내용과 평생공직자로서의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1966년 국세청 출범과 함께 당시 20살 청년이었던 저는 9급 공무원으로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관 20세의 어린 나이에 국세청 개청요원으로 들어왔으니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연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있을 때 마다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직업을 '천직'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재직 중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에서 복무한 3년을 빼고 2004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마지막으로 35년 이상을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현직을 떠난 후에도 세무사회장 4년을 비롯하여 세무법인 대표로서 지금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평생을 세금쟁이로 살아가는 셈입니다.
말단 9급 세무공무원으로 시작한 20세 청년의 40여년간의 세금쟁이 인생이 비단 세무공무원뿐 아니라 다른 일반직 공무원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참 씨앗 역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평생 세금쟁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세정신문사'에 1년2개월 동안 88회까지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눔과 섬김'의 보람을 느끼고 싶어하시는 모든 분들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천안함 재단' 이사장을 맡으셔서 순국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의 아픔을 돌보셨는데 그 당시 이야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는 세무사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성금에 참여하려고 갔다가 우연치 않게 '천안함 재단'이사장 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안함 재단'이사장 직을 맡으면서 저는 4가지 목적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업으로는 유족을 위한 사업 입니다. 유족 한 가정 마다 국민들의 따듯한 손길 즉 국민성금이 투명하게 전달되게 하는 것 이였습니다. 유족 각 가정마다 5억원의 국민 성금이 전달 되었습니다. 기금운용현황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생존장병 58명을 위한 사업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58명의 생존장병들을 마음의 상처로부터 온전하게 회복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생존장병들의 정신교육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장학금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최전선 NLL을 지키고 있는 일선 해군, 해병대 장병들의 병영생활 개선을 위해 지원하였습니다. 네 번째로는 국민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해 '서해안보 공원' 방문 지원 사업을 추진 하였습니다. 많은 국민들께서 방문하셔서 파손된 천안함 선체를 직접 보시게 되면 더욱 굳건한 안보의식을 품게 되시리라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국내 장학생지원 사업뿐만 아니라 미얀마에 학교건립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석성장학회'와 중증장애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을 위한 복지시설 건립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석성 1만 사랑회'에 관하여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석성' 이라는 이름은 아버지 존함의 가운데 글자 돌 석, 그리고 어머님 존함의 가운데 글자 이룰 성, 이렇게 두 글자가 만나서 '석성' 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책에 나오는 '반석'이라는 단어의 뜻과도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년 초에 아버님을 위해 구이동에 마련해 드렸던 집을 처분한 자금을 종자돈 삼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 오다가 2001년 정식으로 '석성장학회'라는 재단법인을 발족하여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구이동에 위치한 조그만 집을 처분한 자금으로 시작한 장학사업이 현재 크게 늘어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 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연출자는 하나님' 이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대로 행동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미얀마에 학교건립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8년도 미얀마를 강타한 싸이클로 '나르기스'의 피해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현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셨던 선교사님으로부터 피해상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피해 상황은 심각했고 저의 마음을 움직였던 말은 바로 “아이들이 맨 땅에서 공부 합니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곤 딸린 지역에서 가장 열악한 곳에 학교 1동을 지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5개동을 건립하였습니다. 제가 학교 3개동건립을 마쳤을 당시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현지 관계자 분들에게“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제 그만 오라”하신다고 이야기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도 앞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순간 부족한 저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며 '진정한 복음'과'진정한 전도'는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학교건립' 이라는 하드웨어는 이제 제공 되었으니 '복음' 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석성1만 사랑회'는 나눔과 섬김의 자세를 실천에 옮긴다는 마음으로 중증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을 위해 '석성 나눔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시설 건립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에 발족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발달 장애우를 위한 생활관 (석성 나눔의 집 4호점) 이 강서구에도 건립 되었습니다.

회장님의 가족이야기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말씀해 주세요.
저희 1남 3녀들은 모두 어머님의 기도를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크리스천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달서교회' 마루바닥에서 대성통곡하며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어머님의 기도가 신실한 크리스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1남 3녀 모두가 장로, 권사 직분으로 섬기고 있으며, 미국에 있는 막내 여동생의 남편은 목회자 입니다. 미국 아틀란타 '새한장로교회' 송상철 목사가 제 매제입니다.
제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입니다.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는 재미교포 크리스천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식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다'라는 믿음으로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믿음 생활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담 노승빈 (본지 한국후원회장, 백석대교수) | 정리 엄상윤 (본지 한국후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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