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기억에 남은 나의 생애의 편모(片貌)들

니카라구아 선교

2009년 정월이었다. 미국 미시간 주 Saginaw에서 목회하시는 안덕치 목사가 Nicaragua에서 열리는 목사 수양회에 강사로 나를 추천하면서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중미(中美) 구경도 할 겸 좋은 기회로 생각하면서 따라나섰다. Costarica에서 원주민 산족(山族) 선교를 하며 크게 성공한 박성도라는 합동측 선교사가 선교지를 Nicaragua까지 확대하여 사역하는 중, 수도 마나구아에 신학교를 건축하고 거기서 그 주변 목사들을 모아 수양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우리는 항공편으로 Costarica로 가서, 승용차를 타고 Nicaragua의 수도 마나구아에 도착했다. 약 200 명의 목사들과 교역자들이 모여왔다. 그런데 그 목사라는 사람들이 신학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도 목사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중남미의 문제였다. 즉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목사의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틀간의 수양회를 성대하게 마쳤다. 밖에서 온 강사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어서 열광적으로 강의를 듣고 감동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 가졌던 신학교의 개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신학교라면 의례 가능한 한 높은 학문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위에다 신학 훈련을 쌓는 교육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는 이미 목사들이 다 되어 가지고 신학을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니 파격적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신학을 가르쳐서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박성도 선교사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신학교를 거기에 세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그 일에 동참해 줄 수 없겠는가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통합 측 목사인 것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나에게 그런 주문을 하기에, 나는 그래도 되느냐고 재삼 따졌다. 그는 용기를 내어 나의 동참을 요구하기에, 나도 승낙하였다. 그리고 나는 디트로잇(Detroit)으로 돌아와서 준비를 해 가지고 다시 한 달 후에 마나구아(Managua)로 가서 신학교 교육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3년 간 그 학교 학장의 직함을 가지고 교육을 하였고, 2011년 12월 10일에 제1회 졸업식을 하면서 51명의 졸업생을 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을 빠져나왔다. 보람 있는 일이었다.


2011년은 매우 바쁜 한 해였다. 연초에는 PCUSA에 속한 한인 교역자 부부 수양회 강사로 칼리포니아 주 Lake Tahoe 장로교 수양관에서 며칠을 지냈고, 6월에는 인도네시아 선교 40주년 기념 대회에 강사로 다녀왔다. 내가 인도네시아 한국인 선교사 제1호였기 때문에 출석할 수밖에 없었다. 9월에는 미국 알라바마 주의 Birmingham 장로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였다. 이렇게 상당히 바쁜 세월을 보냈다.


성지답사 그리고 모스크바 장신대 제3차 방문

2012년 정월 경주 보문단지에서 모인 장신대 총동문회에서 모스크바 장신대 총장이신 손승원 목사를 만났고, 다시 한 달 동안 모스크바 신학교에서의 강의 청탁을 받았다. 1월 31일에 장신대 성지답사 Team에 합류하여 신학생들과 함께 약 반 달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시카고에 와서 러시아 입국 비자를 받아가지고 3월 14일에 모스크바로 향했다. 이사장 이흥래 장로님과 그의 통역자인 따찌아나 장로님이 모스크바 공항까지 환영을 나왔는데, 이 장로님 왈 “나는 목사님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정정하게 걸어 나오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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