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 땅 백성의 십분의 일이 남는다고 해도 그 땅은 다시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잘리더라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 같이,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가 되어 거기에서 다시 싹이 틀 것이다.(사 6:13)”,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며,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 19:30-31)”

1988년 충북영동 미루나무 숲속에서 '10만 C 선교사' 비전에 기도로 헌신하였고, 1990년 C국에서 찾아오게 하신 한 영혼을 통하여 마게도냐의 환상 같은 부르심을 듣게 하신 후에 C국을 사랑하여 C국을 위하여 살고 죽겠다고 순종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70여 가정이 쓰나미처럼 이 땅에서 떠나야 했고 나도 언제 그렇게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낯선 전화에 놀라고, 생각지 못한 방문자의 초인종에 놀라는 일상의 긴장이 반복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들어온 이 땅인데 많은 선교사들이 죄인 취급받으며 내보냄을 당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다시 들어오겠다고 기다리며 길을 찾았을텐데 이제는 다들 다시 들어올 생각보다 다른 길들을 찾습니다. 이제 더는 사랑할 힘조차 사라져버렸고, 정조차 떨어졌다는 떠난 이들의 서운함과 아픔은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떠나고 싶은 땅이 되어 갑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우리로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정 떼버리려고 하였던 사단의 전략이 이긴 듯 합니다. 흔들리는 사랑, 사라져가는 정, 남아 있음이 감당해야 하는 긴장되는 불안함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주님의 부르심과 일하심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지켜주심이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가 저로 하여금 지난 2월초 모든 것이 닫힌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왕복 2,500km의 T사역 길을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지금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신뢰하면서도 긴장되는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품어가게 하신 그 땅의 영혼들을 만나는 일은 멈춤 없이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일이었기에 H 산맥을 넘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는 고통이었습니다. 큰 설산 등정을 도와주는 동쪽 사람처럼 H 산맥 끝자락에 숨겨진 K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복음의 동쪽 사람이 되어 여전히 큰 눈산 너머의 티벳 땅을 밟을 수 있음이 은혜였습니다.

그 큰 설산 너머의 더친 가정모임에 공안이 찾아왔지만 더 이상 성도수를 늘리지 말라는 경고만 받고 지속될 수 있음이 감사였고, J 형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히려 기도와 전도의 삶에 열심을 내고 있음이 은혜였습니다.

더 이상 공개적으로 전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 같은 이 땅의 상황 속에서도 주께서 J 형제로 하여금 용기 있게 믿음을 드러내도록 꿈으로, 말씀으로 격려하심이 감사였습니다. 그렇게 버텨내는 J 형제와 아직도 그 땅을 지켜내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주께서 아직도 저를 이 땅에 남아있게 하십니다.

지난 주일예배는 C 교회를 가지 않고 오랜만에 아내와 막내가 출석하고 있는 한인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절반 이상이 낯익은 분들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은 보이지 않고,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많지 않았던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정들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 한 구석이 더욱 무거워져왔습니다. 어떤 분은 어떻게 아직도 계실 수 있느냐고, 어떤 분은 혹 든든하게 봐주는 뒷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웃으십니다. 한국의 한 지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C국 선교사들 가운데 아직도 C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은 여전히 사역하면서도 어떻게 무사한지 궁금해 하시기도 합니다. 나도 궁금합니다. 왜 나는 아직 남아있을 수 있는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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