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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사역의 의의와 미래전망 1

고성준(한국 하나교회 담임) | 등록일 2019년05월03일 15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시대적 사명
세계는 바야흐로 난민의 시대다. ‘시대’라는 단어에 주의하자.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적 사명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에스더의 사명은 ‘하만’의 이스라엘 말살정책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모세의 사명은 출애굽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시대적 과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말씀과 진리의 상실이라고 하는 중세 암흑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까이 조용기 목사님의 사명은 전후 가난과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하는 60년대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중심사역’이 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에게는 이 ‘시대적 사명’이 주어진다. 물론 지역교회는 속한 지역에서 감당해야 할 지역적 사명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 시대의 시대적 사명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난민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일까? 아니, 좀 더 본질적으로 현시대가 ‘난민의 시대’가 과연 맞는가? 난민선교의 의의를 찾아가는 고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중심사역’은 무엇일까?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이해하는 수직적 관점과, 시대를 통찰하는 수평적 관점이 병행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 그 시대의 ‘중심사역’이라면, 그 사역은 수직적 관점과 수평적 관점의 교차점에 위치할 것이다. 

 

역사의 무대
수평적 관점이란, 그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관찰함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수평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역사의 무대’에 올리시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5세기 로마제국에 신문이 있었다면 가장 큰 헤드라인 뉴스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로마제국 변방에 살고 있던 야만족들의 침략에 대한 뉴스였을 것이다. 고트족을 비롯해 게르만족, 앵글로 색슨족 등, 로마인들에게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4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로마제국을 괴롭혔다. 국력이 약해진 로마제국 시민들에게 야만족들의 침략은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뉴스’였다.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꽃피운 기독교제국의 무대에 야만족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410년, 로마는 야만족들에 의해 함락되고 475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다. 고트족들의 침략은 서로마가 함락되기 백여 년 전인 4세기 초부터 시작되는데, 만약 이 백년의 기간 동안 야만족들에게 선교가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야만족들이 로마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 백년이 흘렀을 때, 이들은 모두 크리스천이 되었다.

 

8세기, 거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유럽은,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기독교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이 시대에 신문이 있었다면 헤드라인 뉴스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분명 유럽을 위협하고 있는 해적 바이킹들에 대한 것이었으리라. 5세기 고트족이 로마제국을 위협했던 것처럼, 바이킹들은 유럽을 위협하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지금의 유럽)이라는 기독교 무대에 바이킹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결국 9세기 초, 기독교제국이었던 유럽은 바이킹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된다. 흥미로운 것은 역시 백년이 흐르고 나자, 이들이 모두 복음화된 것이다.

 

두 역사가 증언하는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왜 야만족과 바이킹들을 역사의 무대에 올리셨을까?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민족,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람도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복음을 전한다고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일만한 때가 있듯이 민족도 마찬가지다. 각 민족마다 복음을 받아들일만한 ‘무르익은 때’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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