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계속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속에 이라크에만 3백만 명 이상의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전쟁 후 한 미국 선교사가 전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이메일 기도편지를 발송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에 교회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손에서 자라날 3백만의 이라크 고아들은 10년 후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교회가 손 놓고 있었던 그 10년이 흐른 후, 이라크 북부를 중심으로 IS가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3백만의 소망 없는 아이들이 IS가 자라날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지 못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다. 그런데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드'라는 사람이 비전을 제시한다. IS에 들어오면 돈도 주고 결혼도 시켜준단다. 더욱이 이 일은 알라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성전(聖戰)이란다! 반응하지 않겠는가? IS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의 시작도 비슷하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이 고아들을 전쟁터에 버려두지 않고, 업고 다니며 전쟁을 치르는데, 이들에 의해 키워진 고아들이 훗날 탈레반이 되었다.

세계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UN 공식통계에 집계된 난민의 수는 2017년 기준으로 6,850만 명이다. 이들 중 약 40% 이상이 아이들이다. 이들은 고아거나, 부모가 돌볼 능력이 없는 사회적 고아다. 십여 년 전 이라크 전쟁고아의 10배 가까운 숫자의 아이들이 버려져 있다. 만약 교회가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게 될까? 3백만 이라크 고아들이 10년 만에 IS를 낳았다면, 3천만 난민 아이들은 10년 뒤 무엇을 낳을까?

역으로 이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 이라크 고아들과는 달리, 현재 흩어져 있는 난민 아이들은 얼마든지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이들을 돌보고 있으며, 교회, 방과후학교, 직업훈련학교 등을 통해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슬람 땅에 새로운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이슬람 땅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의 문이 열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아를 돌보는 것은 21세기 교회 앞에 주어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 아이들이 누구의 품에서 자랄 것인지에 10년 뒤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다른 미래를 열 열쇠가 교회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무슬림선교라는 시대적 사명에 불순종하여도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무슬림들을 무대에 올리시고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교회가 움직이던 움직이지 않던,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행하실 것이다. 5세기 로마제국처럼, 9세기 유럽처럼 말이다. 다른 미래를 만들 선택지는 교회의 손 안에 있다.

난민사역의 현재

UN이 발표한 6850만의 난민은 아프리카 난민들을 비롯해, 시리아난민,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특히 하자르족)난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이유의 이주민들을 포함하고 있다. 난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난민의 시대'라는 용어를 낳게 한 난민은 크게 두 종류의 난민들이다. 시리아 내전을 통해 발생한 난민들과 페르시아권인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다. <계속>


고성준 목사
수원 하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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