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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사역의 의의와 미래전망 6

고성준 목사 | 등록일 2019년06월07일 09시3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정말 중요한 이슈는 “난민을 환대하고 섬길 것인가 아니면 혐오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슈는 “어디서 이들을 섬길 것인가?”이다.


로마제국이 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을까, 전하지 말아야 했을까? 이건 이슈가 아니었다. 4,5세기는 야만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카이로스였기에 어찌되었던 복음은 전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였다. 야만족들이 살던 그 땅에서 섬길 것인가, 아니면 로마제국 안으로 불러들여서 섬길 것인가? ‘어디서’ 이들을 섬길 것인가? 오늘날도 동일하다. ‘어디서’ 이들을 섬길 것인가? 이것이 진짜 이슈다.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진짜 이슈를 놓치고 눈에 보이는 현안에만 휘둘리게 된다. 역사가 주고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21세기, 하나님은 중동 무슬림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서’ 이들을 맞아야 하는가? 이것이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라’고 하셨지, ‘오면 해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성경적 원리는 그들의 땅으로 ‘가는 것’이지, 그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 행 17:26

하나님께서는 각 족속으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단다. 왜? 보호하시기 위해서! 타락한 인간들을 족속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살도록 했다가는 싸우고 죽이고 난리가 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신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지파의 경계를 명확히 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 더 가지겠다고 빼앗고 싸우고 죽이고... 타락한 인간은 분명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성경은 민족의 경계를 하나님이 정해놓으셨다고 이야기한다.

 

1) 문화가 다르다
그렇다면 ‘난민’들을 어디서 섬겨야 할까? 그들의 땅에서! 성경과 역사가 동시에 주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다. ‘그들의 땅’에서 섬겨야 한다. 성경은 복음을 들고 ‘가라’고 했지, 너희가 ‘오라’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서구와 유럽의 예를 보면, 아랍계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서구 국가에서 잘 적응한 예는 거의 없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서, 적응에 모두 실패한 것이 사실이다. 이민 2세들 중에서 테러리스트가 나오고 있는 것이 증거 중 하나다. 부모들은 테러리스트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전쟁을 피해,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녀들은 왜 테러리스트가 될까? 적응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삶과 가치체계는 서구의 그것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적응이 쉽지 않다. 심지어 독일이나 유럽에 난민으로 들어왔던 무슬림들 중,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 ‘이슬람 국가건설’에 대한 신학
더욱이 온순한 무슬림이라 해도 숫자가 많아지면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한다는 점은 대부분 비슷하다. 호주의 예를 보면, 정당을 만들어 집권하려 하며, 레바논도 이와 비슷하다. 이들이 모두 ‘강성 무슬림’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자연적인 성향이고 신학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잘 적응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3) 무슬림들이 적응하기 편안한 곳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무슬림 난민들은 그들이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는 곳에서 섬겨야 한다고 믿는다. 터키를 비롯해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땅에도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땅도 충분하고, 조금만 희생하면 재정적으로도 가능하다. “거기서의 삶은 가난하고 힘듭니다.”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2세들 중에는 테러리스트가 나오지는 않는다. 2대, 3대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 적응하고 동화된다. 뭐 좀 차별은 있겠지만, 비이슬람 지역에서 받는 차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교회는 이곳에서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 기억하라. 난민들을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이슈가 아니다 ‘어디서 도울 것인가’ 이것이 이슈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무슬림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선교적 기회입니다!”라는 인식은 조심스럽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교적 기회는 맞다. 비자발적 선교. 그러나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하나님은 민족의 경계를 정하시고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아직 기회가 있는데... 한국으로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발적으로 가는 선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 손톱만한 구실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역사가 말해준다. 지금은 오는 난민들을 마음 다해 환대하고 섬기는 것만큼이나, 무슬림에 대한 근본적 해결 - 이슬람 선교에 대해 교회가 눈을 뜨고 움직여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5세기, 8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비극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난민문제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 오는 난민들을 교회는 최선을 다해 환대하고 섬겨야 한다. ‘난민 고 홈!’은 크리스천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그들의 땅에서 난민들을 섬기려는 인식과 헌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대세가 되어야 한다.

<계속>

 


고성준 목사
 수원 하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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