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카펫 생산지인 조지아주 달톤에서 카펫의 화학염료를 공급하는 '창텍스 트레이딩'의 임창빈 회장이 새한장로교회의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본지는 새한교회를 방문하여 임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나뵈어 반갑습니다. 무척 일찍 도미하신 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저는 상공부장관, 군장성이 있는 유복한 형편에서 성장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에 소홀해지자 아버님께서 고심끝에 1958년 저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회장님은 믿는 가정에서 성장하셨나요?
아뇨, 저는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무속신앙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크리스찬을 신뢰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와서 무엇이 가장 힘드셨나요?
센트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여 첫날 강의를 들었는데 정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그날 이후 하루에 네시간도 못자면서 공부했고, 그 덕분에 수학, 물리, 화학 등 이과 과목 모두 A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미주리대 석사과정도 높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 당시 학비와 생활비로 매달 150달러를 한국에서 보내주셨어요. 하루는 문득 “이민자로 타국에서 살아 남으려면 자립 정신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송금을 중단 시켰습니다.
학교와 식당에서 쓰레기 치우기, 접시닦기, 웨이터 등의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5000불을 모았습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큰 돈을 버는 사업가가 되었지만 유학 초창기 부모님의 도움 없이 힘들게 일하며 자립할 수 있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화학 염료를 생산하는 공장은 매우 생소한 분야인데 그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미주리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 인터뷰하러 다녔고 LA의 한 회사의 인터뷰에서 “조지아 달톤지역에서 일할 수 있냐?”는 오퍼를 받고 승낙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성공한 사업가로 바쁜 시간을 보내셨는데 회장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분이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제 여동생의 기도와 전도 덕분입니다. 제 여동생은 기독교 가정인 일동제약 가문으로 시집을 가서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동생이 목사님과 함께 미션전도집회에 참석차 애틀랜타를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저에게 미션 전도예배에 참석을 권유했습니다.
물론 저는 강하게 거부했으나 여동생은 끈질기게 예배에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거절하자 동생은 “오빠, 내가 죽어서 장례식을 할 때도 안 오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네 장례식에는 참석할 것이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내 장례식이라고 생각하고 와달라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부탁들 하니 거절을 못하고 참석하였습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하자 여동생은 저보고 자동차 열쇠를 달라고 하였고 저는 아무 생각없이 자동차 키를 건네주었습니다. 첫날 예배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예수는 내 구두, 예수는 내 구두''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신이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에게 제 자동차 열쇠를 돌려달라고 했더니 동생은 열쇠를 주지 않고 하루만 더 있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다음날 예배에서 어제 들은 찬양이 들리는데 “예수는 내 구두”가 아닌 “예수는 내 구주”로 들렸습니다. 그들이 정신나간 것이 아니라 제가 잘못 들은거죠. 첫 날과 다르게 둘째날은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룩해 보였고, 은혜가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세속에 물든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나도 모르게 마음에 문이 열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제 인생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죠.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게 가장 큰 변화는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죽음을 그저 어둡고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었으나,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저에게 죽음은 마치 해가 뜨고 질 때 석양에 물드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 하늘을 훨훨 날아 천국으로 가는 소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지금 82세입니다. 제 나이 60세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후 한 주도 주일 성수를 빠지지 않고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삶의 생활신조가 있다면 본지를 통해 나누어주세요.
크리스찬 타임스를 읽는 독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민자로 돈도 없고, 영어도 못 하는 제가 성공한 이유는 매일의 삶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살면 당장은 별 차이가 없겠지만, 1년, 5년, 10년 앞 미래의 성공은 스스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우리 1세대가 겪은 고생이 우리 자녀들의 삶을 더욱더 낫게 만들이라 믿습니다. 이왕 할 것이라면 확실하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2세들에게 조국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려주고, 신앙의 선배로 대대손손 신앙의 뿌리를 이어나가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건강과 평강, 기쁨이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대담 노승빈 (본지 한국후원회장, 백석대 교수)·정리 김태은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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