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소피아 네프스키 성당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Sofia)
소피아(Sofia)는 유산균 식품의 발달로 장수국가에 속하는 불가리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 중 하나 입니다. 산들이 둘러 있는 이 도시는 아드리아 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도나우 강으로 합류하는 이스쿠르 강의 두 지류가 흐르고, 산과 어우러져 자연이 아름답고, 푸른 숲의 공원이 많아 '녹색의 도시'라고도 합니다.
이슬람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소피아는 시내 곳곳에는 이슬람 사원과 그리스 정교회가 나란히 나란히 의 풍경 입니다. 시내에서는 트램이 중요한 교통수단이며, 인구는 120만 명 입니다.
불가리아어는 남 슬라브계 언어로 키릴 알파벳으로 쓰여집니다. 테살로니키(Thessaloniki)에서 온 형제인 성 키릴(Cyril)과 메소디우스(Methodius)가 9세기에 키릴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이 두 형제는 정교회 사제이면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알파벳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불가리아와 러시아 사이의 유대관계가 강한 이유중 하나는 같은 알파벳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인 소피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데, 7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피아 도시의 역사는 B.C 8세기경 고대 트라키아 부족인 세르디족이 이곳에 정착했고, 이후 B.C 29년 로마인들이 정복한 후, 콘스탄티누스 1세의 통치하에서 전성기를 이루어 342년에는 그리스도교 주교들의 중요한 사르디카 공의회 개최지가 되기도 합니다.
4세기 후반 경 동로마 제국에, 그후 고트족(族)과 훈족의 침입으로 파괴,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 소피아는 불가리아 제1왕국(809∼1018년)과 비잔틴 제국(1018~1185)을 거쳐 1382년 부터는 오스만 터어키 제국(1396-1878) 지배하에 놓여지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지점이 됩니다. 이때 동양적 특색이 더하여 지게됩니다. 1878년 1월 4일 러시아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납니다. 일년후 불가리아의 왕국(1908-1946)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에게 점령, 1944년 다시 러시아의 도움으로 해방되어 1947년 불가리아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2차 대전 후 세련되게 재건된 시내 중심가와 노란 벽돌의 넓은 광장은 매력적입니다. 교외는 아직 스탈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어 아름답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꽃집과 정육점이 있는 잰트라빠자르 시장을 둘러봅니다. 이들은 꽃선물을 즐기는데 홀수 꽃송이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짝수는 장례식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한송이 선물이 손에 부끄럽다고 두송이를 하면 실례가 되겠지요?
예, 아니오, 도리 도리와 끄덕 끄덕이 상반되는 문화를 가진 나라를 호기심 가지고 들여다 봅니다. 1991년 사회주의에서 민주화 되기전에는 중국, 베트남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하층 일을 했다는데 1993년 불가리아와 한국 수교 후에는 KOTRA, LG, 삼성, 현대 자동차와 현대 중공업 등이 들어와 상주 직원들이 몇 명은 머문다고 합니다.
중국식당이 300여 곳에 한식당은 2곳, 한국인은 주재원 합하여 약 200명 이랍니다. 한식으로 점심 후 식당 뜨락에서 어린시절에 보았던 백일홍, 맨드라미, 채송화 등을 발견하고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가이드 한별씨는 여러 도시를 다니니 식품 심부름도 잘 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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