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의 찻잔들

역사 속으로 들어갑니다
보스니아, 발칸 반도를 돌아보며 학교에서 배운 유고슬라비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는 남 슬라브인의 땅이란 뜻으로 보통 유고라고 부릅니다.
1973년 4월 한국의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트리오가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의 단체전 우승으로 알려진 사라예보(Sarajevo)는 보스니아의 수도 입니다. 1984년 14회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아름다운 나라가 1992년~95년 유고 내전으로 아픈 상처의 역사를 품은 나라로 바뀝니다. 필자가 다녀온 발칸 다섯 나라들은 모두 옛 유고슬라비아에 속한 지역들이어서 전쟁과 내전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모두의 역사입니다.

오스만 터어키가 지배하던 400여년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상당히 동화됩니다. 카톨릭을 믿던 크로아티아인과 정교회를 믿던 세르비아인중 상당수가 그들의 종교를 포기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합니다. 러시아에게 패한 터어키가 물러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왕조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무력으로 장악합니다. 계속되는 외세의 지배에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티토(Josip Broz Tito-1892-1980)는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6개 나라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1945-1992)'을 이룹니다. 후에 유고 내전으로 분열 되어질 수 밖에 없었듯이 통합은 어려웠습니다.
한 연방국가에 세 종교(천주교, 동방정교회, 이슬람교), 다섯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에 소속 국가는 여섯 나라(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인 복잡한 인구 구성만큼 오랜 민족적, 종교적 반목이 있어 분쟁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전부터 카톨릭, 동방정교회,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어 분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인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유럽의 화약고'라 합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하면서 유고연방은 붕괴되어 갑니다. 티토는 연방내 여섯 국가의 자치권을 인정하며 민족간의 갈등을 아우르는데 그의 사후 연방내 최다 인구를 차지했던 세르비아인과 나머지 민족 사이 대립이 일어납니다.
티토는 조국 크로아티아에서는 위대한 인물로 불리우지만 행정 개편 당시 작은 항구인 네움(Neum)을 보스니아에게 흔쾌히 선심을 씁니다. 하여 여행자들은 두브로브닉을 가려면 보스니아의 네움을 꼭 들르게 됩니다. 네움에서는 잔잔한 아드리아 해의 저녁 노을을 평화롭게 즐기게 됩니다.

1990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차례로 연방에서 탈퇴하지요. 세르비아인 중심으로 유고연방을 유지하기를 원했던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1941-2006)는 '대(大)세르비아'주의를 내세우며 독립을 원하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세르비아 영토를 확장해 세르비아인을 위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침공하고, 각지의 세르비아 반군들을 내전으로 이끌어 냅니다. 세르비아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잔인하게 살해하는 보스니아 내전, 즉 “유럽의 킬링필드'라고 불리우는 인종 청소를 행합니다. 세르비아 군인과 민병대는 인종말살 정책으로 계획적으로 부녀자를 집단 강간합니다. 이슬람계 남자에게는 치욕감을 주고 낙태를 할 수 없을 시기까지 군 수용소에 감금합니다. 영화 “그르바비차”를 봅니다. 이 영화는 당시 전쟁 피해자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엄마, 난 아빠 어디 닮았어?” “너는 나를 닮았어” 내전 당시 민족대량 학살과 이슬람계의 씨를 말리라는 명령으로 선량하던 이웃들이 별안간 총부리를 들여대고 성폭력을 하였습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마을은 사라예보의 그르바비차, 사회는 강간 피해자를 부끄러워합니다. 하여 2만 여명의 여성들이 죽거나 집에 가지 못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갑니다. 내전이 끝난지 12년이 지난 2007년에야 강간 피해자도 전쟁 피해자로 인정하는 법이 통과됩니다. 여행하면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면 감동하곤 하는데 이 전쟁 이야기는 참으로 처절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스니아인들은 이슬람, 동방정교, 카톨릭, 개신교, 유태교 등 다른 여러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해 왔답니다. 예술과 건축, 음식의 다양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용은 잔혹한 전쟁인 '인종청소'로 망가집니다. 전쟁 후에도 서로들 아픈 기억은 지워지기 어렵겠지요. 할퀴고 상처 난 마음과 종교적 갈등은 이 나라의 피할 수 없는 숙제가 아닐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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