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J. McKenzie. 15. July 1861 – 23 June 1895 (Entering Korea in 1893)

맥켄지 선교사는 1861년 캐나다(Canada) 노바스코샤 주(Nova Scotia) 케이프 브레톤(Cape Breton 섬)에서 스코틀랜드계의 아버지 라버트와 어머니 맥크레 사이에서 8남매 중에 막내로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에 주에서 주는 준교사 자격증을 받고 19세까지 고향 근처에서 교편을 잡을 정도로 성숙하였다. 델하우지 대학(Dalhousie College)과 장로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시절엔 라브라도(Labrador)에서 1년 6개월 간 개척전도를 하고 목사안수 후 로어스튜위액(Lowerstewiack)에서 2년간 목회를 하였으며 조선(한국)선교를 위하여 핼리팩스(Halifax)에서 의학 공부를 하였다.

조선(한국)선교에 대한 뜻으로 캐나다 장로회 해외선교부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당시 선교부에서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여서 조선(한국)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맥켄지 선교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선교의 중요성을 역설을 하고 친구 및 후원자들로부터 모금을 하여 개인 자격으로 조선(한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최초의 자비량 선교사인 셈이다. 1893년 그는 조국을 떠나 길고 긴 여행 끝에 1893년 11월 27일 일본에 도착, 동경에서 9일을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조선(한국) 선교지에 대한 이야기를 선교사들을 통하여 얻었다.
1893년 12월 7일 일본을 출발하고, 12월 12일에 드디어 제물포에 도착을 하여 그가 바라던 선교지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맥켄지 선교사는 45km를 걸어서 서울에 들어왔고, 먼저 선교사로 와있던 언더우드 선교사와 기포드 선교사의 영접을 받았다. 조선(한국) 말을 배우고 선교지를 탐색하던 중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자생적으로 설립한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갯마을에 위치한 솔내교회의 초대 목사로 1894년 2월 3일 부임하게 된다. 맥켄지 선교사는 한국인들과 같이 지내며 한국 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조선(한국) 음식을 먹으며 조선(한국)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 등 조선(한국) 사람과 같이 아니, 조선(한국)인으로 살아갔다. 특히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성탄절에 미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솔내에 있던 맥켄지 선교시에게 보냈는데, 그는 그것을 조선(한국)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끝까지 조선(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하며 그 선물들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또 1895년 7월 솔내교회를 신축하여 헌당식을 하고 교회를 개방하였으며 교회 내의 공간을 교육의 장 및 환자들의 병실로도 사용을 하게하는 등 주민들을 위한 일을 먼저 하였기에 솔내 주민들에게 폭넓은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 목회 당시 동학군이 솔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는데 주민들의 보증으로 전혀 해를 입지 않게 되었을 정도였다. 맥켄지 선교사는 동학군 요새를 직접 찾아가 피투성이가 된 동학군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고 하여 이후 동학군 지도자들이 솔내를 지나갈 때는 솔내교회로 가서 맥켄지 선교사를 찾기도 하였다. 맥켄지 선교사가 사역했을 당시의 소래는 구한말 소용돌이 속의 한 현장이었다. 이로 인해 맥켄지 선교사는 절박한 위기 상황을 수차례 경험하였다. 그는 “지난 겨울 두번씩이나 나의 생명이 위태로웠다. 나는 그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히 가까운 지역에서 17명의 일본 상인들과 3명의 승려들이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사람의 기독교인들도 동학교도들이나 다른 어떤 위협으로부터 희생되지 않았다.”고 그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동학교도들은 맥켄지를 좋아했으며, 후에 소래교회가 건축을 추진하게 되자, 마을의 많은 동학교도들이 건축헌금을 했다. 이 일은 서학을 반대한 동학교도들이, 그들 스스로 서학의 포교 장소를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맥켄지 선교사는 주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이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는 소래의 기독교인들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그의 선교사역을 지속시켜주는 거룩한 힘이었다. <계속>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