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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두레마을 조규백 목사

애틀랜타의 생명을 살리는 ‘치유와 회복의 두레마을’

대담·정리 김태은 | 등록일 2017년08월16일 20시3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둘루스 한인타운에서 한 시간 떨어진 메이스빌에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메이스빌 두레마을을 방문했다. 
 
공동체 목회는 생소한데 언제부터 공동체 사역에 비전을 가지게 되었나요? 
제가 감리교 신학대학 졸업 후 첫 목회 부임지는 강원도 평창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의 산골짜기 마을에 위치한 산돌교회입니다. 1989년부터 그 지역에서 12년 동안 농촌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땐 ‘부모님이 평생 농업에 종사하셔서 이젠 농사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막상 시골 마을에 부임하니 예수님이라면 이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목회하실까 생각했습니다. 높은 곳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라면 ‘이들과 함께 농민이 되어야겠다’라는 목회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부임하고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마을 농사일을 도우며 교회 공동농사를 통해 교회 재정을 만들었습니다. 10여 년을 목사로서 공동체를 같이 하며 주민들과 자급자족 하다 보니 공동체 비전이 생겼고 서툰 몸짓으로 공동체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강원도 평창에 ‘되살림 공동체’를 만들어 12년을 사역했습니다. 
 
 
그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당시 농촌교회는 재정이 힘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십일조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땅을 빌려 교회 공동 농사를 시작했어요. 10일에 하루는 몸으로 일하는 십일조를 시작하며 자연스레 십일조 신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장례식을 치를 병원시설이 없어 염을 했는데 마을 목사인 제가 염을 맡게 되었으며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분까지 나중엔 마을의 염은 다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웃음) 
 
미국에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2001년 ‘미주 두레마을’ 디렉터로 초청받아 미국에 왔습니다. 처음 공동체 사역을 시작한 곳은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 필드’ 엘에이에서 두시간 거리의 지역이었습니다. 3년 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하나의 모빌 홈으로 시작한 공동체는 40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9년 동안 과일농사를 중심으로 농업을 정착시켜 나갔고 청소년 및 대학생 캠프, 사모 수련회, 몸 비우기 등과 같은 영성훈련으로 함께하는 분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김정호 목사가 두 번 방문하셨고 애틀랜타 메이스빌을 자주 언급 하셨습니다. 
 
캘리포니아 두레마을 이후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2010년 1월 미조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평화마을’ 프로젝트의 디렉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땅 115에이커를 개발하여 ‘국제결혼 가정 선교회’를 세우고 몸도 마음도 지친 국제결혼한 분들에게 고향같은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함께하며 5년을 지냈습니다. 
 
평화마을 프로젝트 이후 애틀랜타에 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5년 1월 평화마을 프로젝트를 마친 후 김정호 목사, 강성도 목사와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두레마을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두레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2월 사모와 함께 방문하여 마음에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 무렵 갑작스레 김정호 목사가 뉴욕으로 가게 되었습니다.(웃음) 
 
애틀랜타에 오신 후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애틀랜타로 파송 받고 ‘해밀턴 감리교회’와 ‘메이스빌 두레마을’을 함께 맡았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한가지는 내려놓았습니다. 가장 힘든 기억은 교회가 비전을 가져야 하는데 그 당시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장로님과 기획의원들을 만나, 후원 이사회를 만들며 메이스빌 재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모든 일이 쉽지 않았지만, 한인교회 성도와 김세환 목사의 도움으로 지금의 메이스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두레마을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두레마을의 기본 이슈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두레마을’의 ‘두레’는 몸과 마음이 고갈된 자의 목을 축여주는 두레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레마을’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애틀랜타 지역에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 편안한 숙소를 마련하지 못했으나 올 가을에 모빌 홈을 마련 내년 1월부터 숙식할 수 있게 됩니다.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지 30여 년이 흐르니 공동체의 5가지 줄기가 생겼습니다. 
첫째, ‘치유 회복이 있는 공동체’ 이민자의 삶은 고되고 힘듭니다. 마땅히 쉴 곳도 회복할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것이 두레마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둘째, ‘거듭나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두레마을은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말씀을 배우며 예배와 집회를 통해 삶이 거듭나고 정신이 거듭나는 교육 공동체의 역활을 하게 됩니다. 셋째, ‘나눔과 섬김이 있는 선교 공동체’ 두레마을을 통해 나눔과 섬김의 삶을 배우며 선교의 삶에 함께 참여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고 삶의 중심을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삶이 되도록 훈련 시킵니다. 넷째, ‘유기농업을 통해 생명과 평화를 일궈내는 공동체’ 농사는 하늘이 가르쳐주는 가장 진실한 삶입니다. 현대의 삶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려 합니다. 이는 사탄이 원하는 삶입니다. 농사는 사람이 자연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농사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사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농사는 삶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배우게 하고 진정한 영성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기독교의 십자가 신앙은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아닌 내가 싫어도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 뜻과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계속 부딪혀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신앙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다섯째, ‘영성 공동체’ 두레마을은 기독교인을 위한 영성 공동체로 몸 비우기 훈련을 통해 하루의 삶을 말씀과 기도, 노동과 산책을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할 것입니다. 
 
‘몸 비우기’가 뭔가요?
단식 프로그램입니다. ‘비움’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마음을 비웠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우린 우리 맘 속에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모릅니다. 몸을 비우는 훈련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잡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움, 질투, 허세는 잡초입니다. 몸 비우기 훈련을 통해 몸 속에 필요 없는 잡초를 제거하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자라게 하는 훈련을 두레마을에서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애틀랜타 지역 분들에게 바람이 있나요?
애틀랜타 한인교회를 통해 저를 두레마을로 인도 하셨고, 두레마을을 통해 애틀랜타 한인 이민자의 치유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레마을은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일 것입니다. 묵상길이 될 산책로를 만들고 황토 기도방, 도자기 가마터와 국궁장도 마련됩니다. 예수님의 본업인 목공 일을 할 목공예실도 만들고 있으며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은 하늘나라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의 두레마을로 성장하기까지 함께 걸어온 김세환 목사(애틀랜타 한인교회)와 두레마을 운영 위원회, 한인교회 성도님께 감사를 드리며 두레마을의 시작은 한인교회였으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두레마을은 애틀랜타 모든 한인교회와 이민자들 모두에게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두레마을 TEL: 470-326-8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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