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 안의 모습

크로아티아 최남단의 도시 드브로브니크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구불구불한 달마시안 해안가를 3시간 넘게 달려서 스플리트(Split)에 도착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해가 잘 내리쬐는 도시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스플리트의 초기 역사는 그리스 정착민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지요. 달마티아(Dalmatia) 주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두브로니크 북쪽 150km에 있는 아드리아해 연안의 인구 25만 명 정도인 스플리트는 이 나라의 제2의 관광·휴양 도시로 따뜻한 기후와 역사적 유적이 많아 관광객이 모이는 곳입니다. 각종 공업이 활발하고, 포도 재배가 융성하며 목재·대리석의 교역지로 통상의 중심지로서 번창했답니다. 스플리트는 발칸반도와 유럽을 이어주는 항구의 역활도 합니다.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을 이어주고 이탈리아와 그리스까지 연결하는 유람선들이 다 이 도시에서 출발합니다. 유명하게 된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하여 궁전이 지어진 때부터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

디오클레티아누스(디오클레티안,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왕궁은 1979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됩니다. 이 궁전이 12-13세기의 로마네스크 교회 및 중세 요새로 15세기 고딕풍의 궁전, 르네상스, 바로크풍의 건축물 등이 현존한다는 이유이지요.
스플리트 역사 지구는 3세기~4세기에 건축된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 중세 요새, 로마네스크 교회 등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들이 잘 혼재되어 있는 역사 도시입니다. 마르얀(Marjan) 산 아래 스플리트 항을 마주보고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은 현존하는 로마 후기 건축 양식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비잔틴 및 초기 중세 예술 형식으로 건축사에서도 중요하답니다. 호화로운 궁전과 군사적 요새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서라고 합니다. 역사 지구는 발길닿는 곳마다 눈이 닿는 곳마다 역사의 자욱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가 은퇴 후 류마티스를 치료하고 채소를 재배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아드리아의 햇살 가득한 스플리트에 295년부터 궁전을 짓기 시작하여 10년에 걸쳐 스플릿 앞 섬들에서 채취한 석회암과 로마 황제답게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산 대리석으로 궁전 건축에 심혈을 기울여 지어졌습니다. 궁전은 동서로 215m, 남북으로 181m, 높이 18~22m, 두께 2m의 성벽으로 둘러쳐진 이 성은 궁전 이라기 보다 요새에 가깝다고 합니다. 4개의 문으로 구성된 이 궁전은 동문과 서문을 잇는 직선길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황제의 거주지와 신전이 있고, 북쪽 건물에 군인과 시종이 머물렀답니다. 네개의 문중 동문 실버 게이트는 그린 마켓 재래시장과 연결되고 서문 아이언 게이트는 마르몬토 거리 쇼핑가와 이어집니다. 남문 브론즈 게이트는 리바 거리의 바다 그리고 북문 골든 게이트는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이 있는 공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노후를 위해 지은 궁전은 1,700 여년의 역사를 품고 스플리트의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계속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왕궁 성벽에 기대어 있는 재래시장의 좌판에는 말린 무화과가 둥글게 실에 꿰어 진열되였고, 꽃집에는 꽃들이, 그 곁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아낙이 한가롭게 앉아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에게 선물할 앙징맞은 크로아티아 바다무늬 티셔츠를 몇장 골라 봅니다.

로마 제국의 복장을 한 병정들이 왕궁 주변에서 보는 이들의 눈을 흥겹게 하며 사진도 함께 촬영해 줍니다. 둥근 깃이 달린 투구에 짧은 붉은 치마, 긴끈으로 발목까지 묶은 샌들과 갑옷, 망토, 거기에 길고 짮은 칼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마치 북적대는 야외 박물관에서 서성이는 기분 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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